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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시대유감

용산참사,석기시대에 대한 단상

by G_Gatsby 2009. 2. 5.

   촛불집회에서 연일 물대포를 쏘아올리던 포도대장이 은퇴하자 마자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사람이 여섯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도 법치질서 확립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경찰은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고 한다. 조사하는 검찰의 발표내용은 그나물에 그밥이다. 의혹은 지워지지 않는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억울한 목소리는 목이 메인다.

   명박산성에 구리스를 바르고 도로를 통제하고, 지하철의 정차까지 막았으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호구조사까지 하는 수고로움을 했다. 전경버스로 서울시청을 둘러싸고 물대포를 시원하게 날리기도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억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군사독재시절을 연상시키며 시간이 거꾸로 간다고 했다. 세상은 원시시대로 돌아간듯 했다.

   포도대장이 바뀌었다. 이름도 참 묘하다. 이제 석기시대가 도래할것 같다. 공권력이라는 미명아래, 법치질서 확립이라는 미명아래, 우리는 줄줄이 호구조사를 당할지도 모른다. 내가 때리면 구속이지만 내가 맞으면 법치질서 확립이 된다. 용산참사를 보면 미리 예견해서 사전에 방지하는 그들의 법치질서 확립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다. 포도대장이 진화를 했으니, 이젠 투석기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럼 우비에서 헬멧으로 시위문화가 바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석기시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튼 원시시대에서 석기시대로 바뀌어도, 그들이 보기엔 진화요 발전이다. 어쩌면 선진화 일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느끼기에는 과거로 돌아간다는 느낌은 지울수 없다. 달나라로 로켓을 쌓아 올리는 세상이다. 투석기에 헬멧은 올바르지 않다.

사람이 죽었다.

   전쟁에 포로로 잡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온갖 장비를 동원해 사람을 구해낸다. 우리가 영화로도 자주 보던 장면이다. 테러리스트에게 잡혀간 인질을 구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조금만 지체했다가도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다.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포기한다. 경제적인 손해도 감수한다.

   그런걸 보면 인간의 목숨이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다.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만큼 소중하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국가에서는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래서 목숨에 관한 문제에서는 경제적 논리도 , 합리적인 법도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좋아하는 미국도 그러하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여섯명이나 죽었다.
그들이 옥상에서 망루를 설치한 이유가 무엇인가. 법 이라는것이 완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법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한다. 비단 우리만이 그런것도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법이라는 것은 없으며, 늘 약자와 강자,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누구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공권력이 아무리 당연한 법집행이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것은 누가 잘못했냐의 문제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문제다.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분노와 문제의 촛점을 맞추어야 하며, 투입된 공권력의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할 문제다. 그래야 공권력의 신뢰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뜻이 전혀 없는것 같다. 나라의 지도자는 말할것도 없고, 포도대장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말의 양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검찰은 자기편을 감싸려고만 든다. 그래서 속속히 드러나는 경찰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누가 신뢰를 준단 말인가.  우리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억울하고 분노가 치민다.

   단지 한사람이 사퇴하는것이 중요한건 아니다. 꼭 그 사람이 미워서 사퇴하라는 것도 아니다.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앞으로 재발방지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이같은 비극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일종의 약속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가 난다.



선진화된 국가에서 살아가는 법

   꽤나 감상적인 지도자는 정기적으로 라디오 DJ로 나와서 낭랑한 목소리를 전국에 들려준다. 시장바닥에서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선물하는가 하면, 살기 어려운 학생을 직접 찾아가 위로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자신의 월급을 기부하고, 자신의 재산을 교육재단을 통해서 사회에 환원하고자 한단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분노의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 장관이나 내각은 자신의 졸개가 아니라, 나라의 일을 공식적으로 수행하는 일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임명권을 가지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는 일꾼을 써서는 안된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일꾼보다는 나라를 걱정하는 일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특정한 권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된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경찰도, 검찰도... 이 모든것의 주인은 국민이다. 공권력은 국민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지, 특정한 이익집단을 위해서 쓰여지지 않는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공교육을 받으며 내가 배웠던 사실이다.

   아쉽게도 그러하지 못한것 같다. 방송통신에는 여전히 지도자를 위해서 시중들고 있으며, YTN에 들어간 구씨성을 가진자는 나올줄을 모른다. KBS 정연주를  비롯한 기관장을 신속하게 몰아내면서는 대단히 빨랐지만, 국민적 지탄을 받는 자신의 식솔들을 내놓는 데는 거북이 마라톤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누구 편이냐에 따라서 대처가 달라지는 법치주의 사상을 가진 지도자. 그저 고집불통이다.

   시대의 불합리를 외치던 미氏성을 가진 네티즌이 구속되었다. 사회에 큰 혼란을 주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죄가 크단다. 뉴타운 개발의 대형 사기극을 터뜨린 고명하신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선거과정이니 그럴수 있다고 한다. 내가 볼땐 선거에 미친 영향이 더 컸을 텐데 말이다. 뭔가를 외칠땐 자신이 어느쪽 편에 서서 외치는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불만을 터뜨릴땐 내가 처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잘 알고 외쳐야 한다. 안그러면 잡혀간다.


   아무튼 석기시대가 진정 오려나 보다. 고집스런 삼류와 양심없는 포도대장이 반성할것 같지 않다. 이제 투석이 난무하는 시대가 도래할것 같다. 촛불 들고 나가는 바람에 빨갱이 소리를 듣는 세상이다. 선진화로 무장한 국가에서 살려면 미래지향적인 국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도, 헬멧을 착용하고 조선일보를 둘둘말아 손에 들고 검술훈련을 해야겠다.  빌어먹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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