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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시대유감

비열한 거리, 양심없는 세상을 보다.

by G_Gatsby 2009. 10. 13.

김산 평전을 통해서 인간 장지락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그가 가졌던 열정과 꿈, 조국독립에 대한 희망과 염원을 수십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알수 있었습니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부르짖고 싶어도 말할수 없었던 그의 삶을 통해서 나라 잃은 사람들의 서러움을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비가 내립니다.
아마도 비가 오는 이 거리의 어느곳에서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혼자 울음을 삼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저 낭만적으로 다가오던 거리의 풍경이 갑자기 낯설어 집니다.

비열한 거리.

지난 정권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설움을 받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정치적 이견에 따라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정치인들이 할 일입니다. 정치인들이 말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정치적 의사와 견해의 자유가 있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연예인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윤도현은 이미 오래전에 쫓겨났고 얼마전에는 김제동이 방출되었습니다. 시사토론을 진행하던 한 사회자는 이미 오래전에 실직을 당했고, 손석희 교수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KBS와 언론을 장악한 이후 부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시중씨가 방통위원장이 되면서부터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작년에 그렇게 목청껏 부르짖었던 언론장악은 이미 자신들의 뜻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전직 대통령이든 사지(死地)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참 비열한 거리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이견의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의 남용을 통한 복종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촛불집회에 참여를 했던, 전직 대통령의 노제에서 사회를 보았던 간에 그것은 스스로의 결정이고 자유입니다. 그것이 보기 싫다고 해서 문제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달은 항상 그곳에 있다]

보다 높은 곳에서 복종을 강요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풍부한 권력의 북소리는 모두에게 침묵조아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웃긴 세상입니다.

반전시대에 주름잡던 이념적 문제는, 그 시대에 살던 사람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지금껏 계속되는 이념적 문제는 기득권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념적 논쟁의 종식은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대중 선동과 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빨갱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좌파와 친북이라는 말이 친숙합니다.

대중의 목을 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먹을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잘살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자신들의 성을 더욱 굳게 만들고 있습니다. 거짓에 취한 사람들은 거짓된 언론속에 주객이 전도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은 이 비열한 거리에서 설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양심없는 세상.

양심없는 세상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나라당의 모 의원이 손석희 교수에게 출연료가 비싸다면 좀 낮추지 그랬냐는 훈계를 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시건방짐은 알지 못하고 조롱합니다. 자신들 부터 월급을 낮추고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도 검찰은 제정신은 못차리고 있습니다.
권력의 실세가 갖는 의혹은 관심이 없고 죽은 권력에 대한 의혹은 부풀려 문제화 시킵니다. 이미 검찰은 올해 여름의 비극을 계기로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기득권에 대한 검찰의 충성심과, 검찰 스스로 만드는 권력의 무게는 이미 커질대로 커져있습니다. 반성할지 모르는 사람은 자신과 대립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앙심과 복수심을 불태웁니다.

거리에 비친 비오는 거리가 다시 한번 차갑게 느껴집니다.
비열한 거리를 걸으며 오늘도 양심없는 세상에서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