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길을 걷다

'노안'과 붕어빵

by G_Gatsby 2011. 11. 17.

 

게으름에 미루어 두었던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결막염을 심하게 앓은 다음부터 눈이 그리 맑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 눈을 감았다가 뜨게 되면 어지러운 증세가 있었습니다. 불편은 없었는데, 추운 겨울 동면 들기 전에 한번 검진을 받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병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기계에 얼굴을 갖다 대고 눈을 들이 댑니다.

젊은 의사는 눈을 크게 뜨라고 재촉합니다. 엄지발가락 끝과 양쪽 눈에 최대한 힘을 주었습니다만, 젊은 의사는 마음에 들지 않나 봅니다. 번을 재촉하다가 구조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냥 포기합니다. 눈이 작은 것이 죄는 아니지만 괜히 미안스럽습니다.

 

젊은 의사는 무미건조한 말로 '노안'이라고 말을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럽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알아 듣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운동의 중요성과 정기검진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아직 독거인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노안' 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별로 좋진 않습니다. 간단한 안약을 처방 받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 1

 

오피스텔 공사가 한참인 골목에 흰색 봉고차가 급히 멈춥니다.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봉고차 문이 열리고 담벼락과 봉고차 사이에서 인부들이 부끄럼 없이 옷을 갈아 입습니다. 중국말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중국사람 이거나 교포인것 같습니다. 흑색 장화를 벗고 낡은 갈색 등산화로 갈아 신습니다.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검은색 낡은 점퍼를 입습니다. 어느 늙은 인부가 까맣게 주름진 손가락 끝에 하얀색 담배를 걸치고 까만색 입술 사이에 끼웁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온 모양입니다. 고된 노동의 끝을 알리는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릅니다.

 

담배를 피던 늙은 인부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앞을 가로 질러 뛰어갑니다. 마르지 않은 페인트 냄새와 함께 노동의 땀냄새가 살짝 풍깁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지 유난히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립니다. 늙은 인부가 멈춘 곳은 공중전화 부스였습니다. 익숙하게 카드를 넣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도 바다 건너 고향의 안부를 묻는 것이겠죠. 낯선 이방인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익숙했던 곳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일 겁니다.

 

늙은 인부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자신이 고된 노동을 했던 고층 오피스텔 이었습니다. 공중전화 부스를 지나며 그를 '노안' 눈으로 슬며시 쳐다 봅니다. 그리고 늙은 인부의 주름진 눈가에 맺히고 있는 먼지 섞인 눈물을 보았습니다. 중국말이라 알아 들을 없었지만 같은 인간이기에 느낄 있는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그가
뛰어왔던 봉고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중국말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늙은 인부는 수화기를 향해 같은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 하고는 서둘러 끊고 봉고차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낡은 등산화가 땅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를 태운 봉고차가 조금씩 멀어져갔습니다.

 

언어는 알수 없지만 그가 중국말로 되풀이 했던 말이 그리운 사람에 대한 '약속'이고 '그리움'이라는 것은 느낄 있었습니다. 늙은 인부가 떠난 공중전화 부스에는, 고된 노동의 끝을 알려주던 하얀색 담배가 홀로 타고 있었습니다.

 

# 2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라고 생각하며, 어제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때론 없는 그리움에 목이 잠기기도 하고 때로는 원인 모를 기쁨에 들떠 하루를 버텨내기도 합니다. 내가 만든 세상의 넓이 만큼,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내가 버린 세상의 넓이만큼 어제의 이야기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깊이만큼 천천히 늙어가겠죠.

 

가로등이 켜진 골목 어귀에 벌써 붕어빵을 팔기 시작합니다. 이제 골목 골목 마다 겨울이 정말 찾아오나 봅니다. 붕어빵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아주머니가 저를 향해 한마디 말을 던집니다.

"
총각, 맛있어요 한번 먹어봐요." 



'노안' 선고 받고 날에 알수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붕어빵을 한아름 샀습니다. 어릴 적에 먹던 통통한 붕어빵이 다이어트를 많이 하긴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겨울이 찾아 오겠죠. 지금 보다 흐려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게  겁니다. 세상을 예전 보다 보진 못하겠지만 흐려진 시선 만큼, 보이지 않는 것들은 그리움과 추억으로 채워질 거라 믿어 봅니다.


'사는 이야기 > 길을 걷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줘서 고맙다  (8) 2012.03.09
환승역에서  (8) 2011.11.14
내려 놓기와 다시 잇기  (9) 201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