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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문화

김훈 에세이 - 바다의 기별

by G_Gatsby 2008. 12. 12.

한때는 동네 서점을 제 집 드나들듯이 할 때가 있었다.
읽는것에 대한 목마름이 어떤 갈증 보다도 나를 힘들게 할때 였다. 작가 이문열을 기억했고, 이병주의 글에 감탄했고 조정래의 소설을 무척 사랑했었다. 그들의 글속엔 무한한 상상이 있었고 감동이 있었으며, 우리의 자화상이 있었다. 그리고 하루끼와 코엘료의 소설로 이어졌었다. 아마도 한명의 작가가 마음에 들면 그가 쓴 책을 모조리 사는 버릇 때문에, 어느 해 어느 계절에 나에게 들어온 작가는 나의 집요한 상상의 공간에서 꽤나 시달려야 했다.

세상이 바빠지고, 삶이 고단해 질 나이가 되어 가면서 부터 내 마음속의 작가는 자리를 감추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눈에 띄는 작가가 있었다. 바로 김훈 이라는 작가다.

내가 처음 접한 책은 역시 '칼의 노래' 였다.
이순신 장군의 번뇌와 고민을 이야기하는 그의 소설은 무서울 만큼 현실적이었다. 지나치게 간결한 문체와 냉정한 감정 표현은 다른 작가에게서 맛보지 못한 독특함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남한산성' 을 통해서 그를 다시 만났다. 

[관련글] '칼의 노래' - 우리가 부르는 노래

시간이 흐른뒤에 다시 '칼의 노래'를 읽었다. 처음에 느꼈던 감정과는 또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그의 글에는 생각의 여백이 있었고 묘한 감정의 공백이 있었다.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그 여백과 공백을 새롭게 즐길수 있었다. 그리고 [칼의노래]의 양장본을 또 다시 사버렸다. 내가 느낀 이 여백은 시간이 지난뒤에 또다른 여백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바다의 기별' 이라는 산문집을 내었다.


그는 '바다의 기별'을 통해서 그가 살아온 작가로서의 시간을 한번 정리하고 싶은듯 했다. 그는 책머리에 이렇게 말했다.

" 이 묵은 글을 모아놓고 나는 다시 출발선상으로 돌아가겠다. 기다려주기 바란다 " 
- 본문 中 -



이처럼  '바다의 기별'은 작가로서의 그가 새로운 출발선에 서기 위해서, 자신이 보내온 시간을 정리하고 있는 에세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가족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그리고 젊은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인상적인 세상의 풍경과 작품들에 대하여 새롭게 회고하는 내용이다.

아마도 이 책은 김훈 이라는 작가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반가운 책이다. 소설속의 여백으로만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던 그의 감정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단지 감상적인 글이 되어 버릴수도 있다. 그래서 난 이책을 정말 반갑게 읽었다.

작가 김훈은 '바다의 기별'을 통해서 작가로서 그가 느끼는 고통과 기쁨을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어릴적 아버지를 기억하며 적어내려간 글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매서운 감정표현에 목이 메었다.

" 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맞바람이 치던 야산 언덕이었다.
아버지는 오랜 병석에 누워 계셨고,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다.
병장 계급장을 달고 외출 나와서 가끔씩 아래를 살펴드렸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확실성으로 그 언저리에 와 있었다.
아래를 살필때, 아버지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


- 본문 中 -

작가는 그의 삶과 가족의 삶을 바라보며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이야기 한다. 그가 작가로서 바라보고 있는 삶의 풍경, 그리고 그리고 싶은 세상의 풍경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몸살이 날정도로 집중하며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그는 몸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무섭도록 냉정하고, 올라감과 내려감이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나같은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을 은근히 말한다. 그것은 작가로서 공유하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기도 하고, 독자가 함께 깨닫고 나아가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에세이 '바다의 기별'은 산을 오르는 작가가 잠시 쉬며 흘린 땀을 닦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소설 '칼의 노래'의 양장본 옆에 이 에세이를 함께 두었다.
그는 약속했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다시 글을 쓰겠노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몸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새로운 글을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