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길을 걷다

따로 또 같이, 그 담담함에 대한 이정표.

G_Gatsby 2010. 8. 19. 23:01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새벽거리를 걸어봅니다.
대단했던 낮의 열기는 식지 않고 아스팔트 위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고된 노동의 흔적이 베어있는 작은 공장을 지나고, 한숨과 희망이 뒤섞여 있는 재래시장의 비릿한 사람냄새를 느껴봅니다. 한 잔의 커피로 피곤함을 달래보는 택시 기사님들의 퀭한 눈망울을 쳐다봅니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알 수 없는 욕설을 내뱉는 양복 입은 아저씨의 힘없는 다리를 쳐다봅니다. 일그러진 다리를 이끌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할아버지의 작은 뒷모습을 쳐다봅니다. 어디를 보아도 그들에게 가야 할 곳을 말해주는 이정표는 없습니다. 그 덤덤한 거리 위에 매섭게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 1

얼마 전 이웃 블로거인 깊은숲 님이 추천하셨던 늑대토템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초원 민족이 갖고 있는 늑대토템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그보다 더 깊은 본질적인 문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끈끈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다는 것이죠.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거치면서 늑대든 인간이든,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무리의 약자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탱그리를 숭배하는 초원민족에게도, 굶주린 늑대에게도 예외가 없는 필요조건 이었습니다. 수 천년의 생명을 이어오며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진실입니다.

늑대토템.1
카테고리 소설 > 중국소설 > 중국소설일반
지은이 장룽 (김영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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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래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과 표정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즘은 넉넉한 웃음을 짓는 사람보다는 표정 없이 걷고 있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기계처럼 걷고 있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과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땅만 보고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떨 때에는 그들의 걸음걸이가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고, 또 어떨 때에는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지하철 입구에 서면, 뚜벅뚜벅 들리는 사람들의 걸음소리만 요란하고, 그들이 던지는 시선은 조용하고 싸늘합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부지런히 걷고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하고 어찌 살아야 할지 알수 없어 불안해 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비를 맞으며 길을 걷던 한 남자가 뒤를 돌아 봅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한 시선이 아니라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싶은 시선 입니다. 그리고 주위를 다시 한번 돌아 봅니다. 어디에도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습니다. 또 다시 비가 세차게 쏟아 지고 남자의 뒷모습도 어느새 보이지 않습니다.




PS.
이것으로 길을 걷다의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더 이상 걷는 것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난번 ‘12 5분전을 마무리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알 듯 모를듯한 미묘한 시선을 거둘까 합니다. 언제가 될지 알순 없지만 또다시 사는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