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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건빵 할머니와 커피 할아버지.

by G_Gatsby 2008. 8. 24.


우리의 기억에는 익숙한 풍경이 있고, 그 속에는 사람들이 있다.
익숙한 풍경에 대한 기억은 잠시 시간을 정지 시켜 놓고, 그 속에서 아련한 무언가를 찾게 만든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불현듯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추억은 돌아올수 없는 허전함과 함께 살아가는 길에 소중한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건빵 할머니와 커피 할아버지

어릴적 살던 동네의 기억은 선명하다. 비록 지금은 재개발 때문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서 에전의 모습은 전혀 찾을수 없지만, 그때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만은 뚜렷하다.

어울려 살아갈줄 알았던 그 시절, 대문과 대문 사이에 나 있는 골목길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함과 기쁨이 함께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은 내 어린시절의 소중한 놀이터이기도 했다.

양쪽으로 집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따라 내려 가면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슈퍼마켓 앞에는 그늘진 평상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오고 가며 앉았다가곤 했다. 지금은 기억속에서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내지만, 당시에는 바쁜 삶을 보내는 사람들의 힘겨운 발걸음을 잠시 머물게 해주는 휴식처 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점심시간이 지난 후, 큰 길을 따라 할머니 한분이 내려오셨다. 할머니의 손에는 건빵 한봉지가 들려있었고, 할머니를 따라 동네 강아지들이 몰려 들어 꼬리를 흔들어댔다. 할머니는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강아지 한 마리 한 마리 마다 머리를 쓰다듬고는, 건빵 봉지를 열어서 하나씩 입에 물려주곤 했다. 걸어서 10분도 안걸리는 거리를 할머니는 일일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30분이 넘게 걸려 내려오셨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걸어서 내려오신 할머니는 슈퍼마켓앞 평상에 앉아 힘든 숨을 몰아 쉬셨다. 그럴때면 슈퍼마켓에서는 어김없이 비슷한 나이의 할아버지 한분이 나와 옆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할머니 손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쥐어 주셨다. 그리고는 걸어온 길을 서로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내 움직이지 않는 풍경이 되어 오래오래 그들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의지할곳 없이 늙어 버린 할머니는 베풀곳 없는 사랑을 거리의 강아지들에게 나눠주었고, 사랑이 그리운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오기를 매일 같이 기다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걸어온 길을 함께 보며 지나간 기억들을 되살렸고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이 풍경은 수십년이 지나 불현듯 내 기억속에서 되살아 났다.

때론 바쁜 일상은 핑계가 되어 지나간 추억 마저 사치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지난 기억속에 있던 소중한 풍경의 모습을 깨닫는것도 쉽지 않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 고민하고 방황하며 기뻐하며 감사한다. 이렇듯 사랑은 우리의 삶에 있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낡은 사진첩을 꺼내어 어릴적 동네의 모습을 내려다 본다. 사진속 친구들은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사진속에서는 찾을수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넉넉한 미소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속에는 오래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외롭다고 느낀다면, 사랑을 베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외로운것이 아니라 베풀지 못해서 외로운것이다.  경사진 길을 내려오며 자신을 반갑게 맞이 하는 강아지들에게 웃음을 보여주던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를 기다리며 따뜻하게 커피를 타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것 같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후에, 그들이 나누었던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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