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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낮은음자리 사랑.

by G_Gatsby 2009. 7. 23.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늘 바뀝니다.
그저 나만의 세상에 갖혀 있을때에는 모든게 되풀이 되는 지루한 일상이 되지만, 세상 사람들과 부딪치고 이야기 할때에는 늘 새로운 시간이 되는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서 무언가 하나씩 배우게 되는것 같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어느 병원 앞에서 부부인것 처럼 보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환자복을 입은 아내는 휠체어에 타고 있었고, 남편은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었습니다. 한 눈에도 아내의 모습은 병색이 짙어 보입니다. 창백한 얼굴에 바싹 말라서 어깨뼈가 유독 커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병원의 이름을 쳐다 보니 요양병원 입니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힘들때 사람들이 찾아 오는 병원인것 같습니다.

시선 #1

건물이 만들어주는 그림자속에서 부부는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잘 들리진 않지만 아내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 것 같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무릎을 구부려 이야기를 합니다. 아내의 핏기없는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도 웃음 짓고 있습니다.

아직은 젊어 보이는 두 부부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봅니다. 남편의 목덜미에 땀방울이 흘러 내립니다. 아내는 힘없는 팔을 들어올려 남편의 땀을 소매로 닦아 냅니다. 그런 아내의 머리를 남편은 사랑스럽게 손으로 쓸어 내립니다. 뼈만 남은 아내의 눈이 초롱초롱 해지고, 남편을 사랑스럽게 쳐다 봅니다.




고민 #1

사랑은 절대적인 가치지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것 같습니다. 세상의 많은 현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결코 영원한 사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조금더 복잡해 지면서, 사랑을 잃어 버린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절망감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위대하고 대단한 사랑을 꿈꿉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비극적인 사랑이 주는 치명적인 유혹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홀로 사랑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부족함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영원한 사랑을 찾아 평생을 고민하고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쟁취한 사람들은 다시 그 사랑에 싫증을 내기도 합니다. 제도적인 사랑을 하고, 사랑의 열매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사랑을 찾아서 쉼없이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느끼는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한 소설가는 사랑이란 낮은 화음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이라는 노래에서 높은 화음은 돋보이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망에 불과하며, 진정한 사랑은 들릴듯 말듯 삶의 전체를 이어가며 노래의 마침까지 지속되는 낮은 화음이라는 것입니다. 가진것이 많다고, 아는 것이 많다고 위대하고 대단한 사랑을 할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눈과 눈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모습입니다.



낮은음자리 사랑.

부부는 서로 말없이 쳐다보며 웃음 짓습니다.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이 너무도 애틋해 보입니다. 앙상한 아내의 손을 남편은 놓질 않습니다. 흐르던 땀이 식을 무렵, 남편은 다시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병원으로 되돌아 갑니다. 남편은 아내의 앙상한 어깨에 시선을 던지고, 아내는 휠체어를 잡은 남편의 손을 마주잡고 놓질 않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에는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이 웃음짓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70대 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먼 풍경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비록 고단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은 서로의 손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늘 높은음자리의 사랑을 바라보지만,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은 이렇게 소박한 미소와 따스한 체온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낮은 음자리 사랑일 것입니다. 돋보이진 않지만, 낮은 곳에서 만들어내는 사랑의 소리는 큰 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마침표로 이어질때 까지 지속되는 영원한 사랑일것입니다.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집니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따스한 체온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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