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슬금 슬금 피하는 아이들 "아저씨 저리 가세요"

by G_Gatsby 2008. 4. 3.

며칠간의 고된 업무를 마치고 모처럼 하루 휴가를 받게 되었다.
내 등과 바닥이 하나가 될때까지 자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어쩔 수 없이 6시가 조금 넘으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져 버리는 직장인 증후군. 몸이 썩 좋지도 않은데 잠은 더 잘 수 없으니 괴롭기만 하다. 안 보던 책도 뒤적거리다가 마침 담배가 떨어졌다. 출근을 했으면 회사 근처에서 샀을 텐데 모처럼 쉬는 날이라서 사러 가기도 귀찮다. 씻는 것두 귀찮아서 모자하나 푹 눌러 쓰고 밖으로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학교 마치고 학원을 가는지 초등학생 쯤 보이는 여자아이 두명이 서로 손을 잡고 먼저 타고 있었다. 평소에 이 시간대에 엘리베이터를 탈일도 없을 뿐 아니라 이웃들도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윗층에서 사는 아이들인것 같다.
아이들이 맑은 눈동자로 가방을 든채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자연스럽게 얼굴에 미소가 생긴다.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느꼈는지 아이 하나가 내 얼굴을 쳐다 본다.
나는 씩 웃으면서 한마디 한다.

"안녕~ 학교갔다 와서 학원가니?"
"........................................"


어라, 이 녀석들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더니 아무런 대답도 없다. 그러면서 서로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훔, 이웃에 사는 아저씨가 인사를 했는데도 대답도 없다니 예의 바르지 못하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고 문이 열린더니 두 아이들이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 나간다.
밖에는 학원차 인듯 노란색 승합차가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

아이들은 무서움과 두려움에 가득찬 목소리를 지르며 노란 승합차를 향해  돌진한다.
승합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이가 지긋한 중년 여자 하나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아이들을 안는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머릿속에 잠시 뭔가가 스치듯 지나간다.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거울에 잠시 시선이 멈춘다. 그 거울엔 푸석푸석한 얼굴에 까만 모자를 눌러쓴 웬 남자가 하나 서 있다. 나는 순간 몸에 전율이 흐른다.

아이들이 유괴되고 살해가 되어 버리는 뉴스가 많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다. 정작 이 사회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죄책감 마져 든다.
혜진이, 예슬이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고 사회는 특별한 보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적어도 이웃이라는 개념이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정서인 "정"을 통한 공동체 의식은 산업사회와 경쟁사회로의 성장으로 인해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내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문 밖으로만 나오면 서로가 경계해야 하는 남이 되어 버렸다. 이제 내가 생활하고 인식될 수 있는 공간은 내 집 밖에 없다. 사회는 커져 가지만,개인이 설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아이들의 그런 당황하는 모습에 씁쓸한 마음도 들지만,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것이 경찰의 치안 강화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 의식을 가지려는 개개인의 노력과 역할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그러나 이사회가 오랜 시간 무시해 버린 우리들의 정서를 되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의 해맑고 사랑스러운 눈동자와 겁에 질린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