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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37

감자골, 열두살 수진이를 보다. 강원도 소도시.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바라본 한적한 풍경은 휴식과 정겨움이었다. 사람 살아가는 것이 크게 다르진 않을텐데, 어떤 곳에서는 지독한 외로움에 젖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낯선 풍경도 포근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긴 시간을 달려온 나를 시원한 바람이 맞이한다. 대화조차 쉽지 않던 외로움을 버리고, 스스로 감자골이라 말하는 이곳에 정착했다는 녀석이 보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왔다. 삼십대 중반의 노총각.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녀야 하는 나그네 인생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 보는 것이 다르면, 마음도 달라질까? " 녀석이 서울을 떠나기전에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녀석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한다. 까맣게 그을린 녀석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함께 겹쳐진다. 예고없는 방문.. 2008. 8. 5.
교도소 가는길.. 인도가 없는 도로. 노란색 중앙선이 선명하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아 한적한 시골풍경을 그려내는 곳, 그 언덕위 회색건물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터벅터벅 걸어올라 가는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아마도 이 고요한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는 회색건물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리라. 많은 면회객들이 한숨과 슬픔을 안고 걸었을 이 길. 바로 교도소 가는 길이다. 기억 하나. 기억은 선후배의 끈끈한 정속에서 우정에 취하던 대학시절로 돌아간다. 당시에는 여럿이 함께 자취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의 경우 고향 선후배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친구와 방이 몇개달린 좀 넓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새로운 신입생이 고향 후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함께 살게 되었다. 덕분에 고단한 설거지.. 2008. 7. 18.
짠돌이와 6만원 2천원 함께 일하는 직원중에 짠돌이가 한명 있다. 구두쇠와 짠돌이는 가급적 멀리 하라던 인생선배의 조언이 있었지만, 이 짠돌이는 지방 출장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가끔 주변사람들에게 눈총은 받지만 맡은 업무만큼은 정말 꼼꼼하게 잘 해낸다. 회식이 있으면 늘 1차에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개별적으로 이차나 삼차까지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1차 회식비용은 공식비용이 되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것은 개인 지갑에서 각출을 한다. 이 짠돌이는 결단코 지갑을 연적이 한번도 없다. 술을 과하게 마신 날이면 택시비가 없다며 가장 만만한 내 지갑을 털어 간적도 제법 있다. 몇 년을 같이 지냈지만 짠돌이의 지갑색깔이 무슨 색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함께 지방출장을 오게 되면 아무래도 근무 시간이 좀 널널하다. .. 2008. 7. 16.
친구, 가리워진길을 보다. 얼마전 내 친구의 글을 올린적이 있다. 우리는 늘 빛을 쫓아 가면서 등뒤에 그려있는 그림자의 존재를 잊고 산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 감추어진 아픈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글을 올리고 다시 그 친구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할까 한다. [관련글] 30대, 감추어진 친구의 그림자 타박 타박 걸어가는 인생 길. 뒤를 돌아보면 아득히 걸어온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좁고 험한 길을 힘들게 걸어와 모퉁이 작은 바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골라 본다. 가끔은 안개만 자욱하여 끝은 보이지도 않는 가리워진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핸드폰도 없이 살아가는 친구에게 내가 먼저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던 중 거의 한달여 만에 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약속했던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목소리로 녀석을 .. 2008.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