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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55

일년만 친구 녀석이 느닷없이 결혼을 하겠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며 선언을 했던 녀석이기도 했고, 몇 해전 모임에서 보았을 때에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녀석이라 조금은 의아스러웠습니다. 꽤 오랜만에 결혼을 핑계로 녀석과 마주 앉아 술을 한잔 했습니다. 녀석은 결혼 소식을 전하느라 얼굴이 빨개졌고, 못 먹는 술을 먹느라 나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 자기 선언 녀석에게는 꽤 오래 전부터 독특한 술버릇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비관주의자지만, 술만 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비관주의자가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어설프게 쇼펜하우어에 심취한 이후론 친구들과의 대화도 뜸해졌고, 군대에 다녀온 이후론 인도철학에 심취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씨 만은 착한.. 2012. 3. 16.
환승역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에스컬레이터 근처에서 서성거립니다. 1호선과 인천지하철의 교차하는 곳. 사람들은 환승을 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누군가에게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지만 젊은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서인지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소심하게 느린 걸음걸이로 옆을 지나가며 할아버지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 봅니다. 혹시나 무언가 물어 보면 대답해줄 마음을 갖고 말이죠. 광택이 나는 구두에 멋스러운 통바지를 입으신 자그마한 할아버지였습니다. 자식들 집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먼 길을 떠나오신 듯 보였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할아버지를 쳐다 봅니다. 할아버지는 눈이 마주치자 자그마한 손가방에 힘을 주면서 뒤로 살짝 물러섭니다. 인상이 험악한 사람이 웃으면서 다가오니까 순간.. 2011. 11. 14.
노장은 죽지 않았다. # 1 얼마 전에 박찬호 선수의 이적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승반지에 대한 갈망으로 뉴욕 양키스에 입단을 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서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팀을 옮겨 야구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40을 바라보는 노장이 되었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야구에 대한 진지함과 애정이 더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을 대표하고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그의 화려했던 과거에 비하면 현재의 위치는 한없이 작아 보이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언젠가 박찬호 선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야구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이었죠. 나이가 먹을수록 자신의 육체가 노쇠하고 주변의 반응이 차갑게 변하더라도 .. 2010. 8. 9.
새는 스스로 길을 만든다. 해마다 8월 4일이 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정든님 정은임 아나운서 입니다. 벌써 6년이 흘렀네요. 너무도 허무하게 우리들 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모바자회가 열리고, 그녀를 다시 한번 기억 합니다. # 1 그녀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 합니다. 늦은 밤 들려오는 목소리와 낯익은 시그널 음악. 그리고 지친 영혼을 달래주던 따뜻한 감성 까지 말이죠. 늦은 밤에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힘을 주었고, 야근에 지친 직장인들에게는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주었던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는,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에 대한 애틋함이었습니다. 고공크레인 위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던 한 노동자의 절규와 죽음을 .. 2010.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