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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48

익숙한 풍경, 익숙한 세상 할아버지 한 분이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립니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버튼 하나를 누르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눈가에는 진지함이 가득합니다. 한가한 오후에 길을 걷다 보면 노인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청년들은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가로운 주택가의 풍경은 조용히 세상을 걷고 있는 노인들의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젊은이들이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풍경도 좋지만 조용하게 이어지는 노인들의 풍경도 따뜻하고 익숙 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평생동안 산책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나무와 숲 사이로 난 조그마한 길을 걸으며 삶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조용히 길을 걷다 보면 자신만의 시간을 보.. 2010. 5. 27.
나이 한살 더 먹기 휴일이라 늦잠을 자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군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맞는것 같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일 전날이 제 생일입니다. 덕분에 손수 미역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매년 바쁘게 지네다 보니 생일을 기념하는 것도 잊고 삽니다. 어는 때에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맞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하루종일 운전을 하면서 보낸적도 있습니다. 사실 한살씩 나이를 더 먹는 것이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편안하게 집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요즘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읽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참 좋아합니다.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가 가진 자유로운 영혼과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들을 찾다 보니 '지두.. 2010. 5. 22.
초식하는 영혼 넉달째 급여를 받지 못해 쩔쩔매던 늙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가 안좋다고 미루기를 한달. 사장이 해외출장 나갔다고 미루기를 두달. 경리부장이 그만두고 나가서 정산이 안되었다고 미루기를 세달. 급여 안준다고 큰소리 쳐서 기분나쁘다고 미루기를 네달. 사장이 퇴근하는 에쿠스 승용차를 온몸으로 세우고, 말리는 과장과 10여분 몸싸움을 하고, 평생 처음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난 다음날. 해고 라는 말과 함께 누런 봉투가 땅에 던져졌다. 기름묻은 손으로 봉투를 가슴에 품고 나오던 날. 4년간 늙은 몸을 의지했던 낡은 공장 대문을 영원히 떠나던 날. 그는 더이상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다. "우리는 초식하는 영혼으로 태어났다." 우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도 식성이 있다고 한다. 스스.. 2010. 5. 6.
아버지와 휠체어 검은색 점퍼에 검은색 바지. 검은색 구두에 검은색 가방을 맨 남자가 길을 걷는다. 온통 검은색으로 몸을 감싼 남자의 머리가 백발이다. 그래서 유독 눈에 띈다. 남자는 노점에서 딸기를 한봉지 산다. 이것 저것 물어보고는 제일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고른다. 빨간 딸기 더미에서 남자의 머리카락은 더 하얗게 보인다. 결국 남자의 검은색 몸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매달린다. 뚜벅 뚜벅 걷는 남자의 뒤로 네온사인의 불빛을 받은 그림자 마저 까맣다. 모퉁이를 돌아서 초등학교 운동장앞 인도로 접어 든다. 흐릿한 가로등이 켜지면서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먼발치 뒤에서 걷고 있지만 남자의 발걸음이 가볍다는 것을 느낀다. 가볍게 흔들리는 검은봉지. 입가에 번지는 미소만큼 새하얀 머리도 이리.. 2010.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