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정치', 비정상과 일탈이 아니다
창비주간논평.
6월을 정치축제의 달로 만들어야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21년 전 6월 10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겠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교내에서 6월 10일 출정식을 마친 후 학교에 남았다. 수배 신세인데다 남은 활동가도 많지 않은 상황이라 역사적인 6월항쟁을 시작하는 시위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다(이러한 노력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해 필자는 결국 8월 중순 6·29선언 이후 학생운동 관련 첫번째 구속자가 되었다). 그때를 회고할 때 더 한심스러운 것은 그날 저녁 교내에서 몇사람들끼리 나누었던 대화이다. 현장에서 시위가 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우리가 이야기했던 주제는 이제 학기가 마무리되었으니 농활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상황의 변화는 명동성당에서 수백명이 밤샘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작되었다.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는 이것이 어떤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위를 해나가던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우연한 행동의 결과였다. 그러나 명동성당에서 계속된 농성에 시민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여기에는 지금의 여고생들처럼 시위현장을 누비지는 못했지만 인근 계성여고 학생들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이러한 힘들이 6월대항쟁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정당정치의 한계를 넘어선 거리의 민주주의
21년 전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제도화된 공간, 관습적 사고 속에서는 나타나기 힘든 창조적인 에너지가 거리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표출되어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촛불집회의 현상도 그러해서, 그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커다란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조직적·위계적 운동에서 자발적이고 다양한 운동으로, 이념 혹은 거대담론의 정치에서 생활정치로 전환되는 추세와 인터넷의 정치적 역할, 엄숙함보다는 발랄함이 지배하는 현장 분위기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이 1987년 6월항쟁과 비교해도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고 새로운 양상의 '거리의 정치'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의 의미가 과거 가두투쟁보다는 훨씬 확장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석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우선 '거리의 정치'를 제도·정당정치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고, 이러한 에너지가 제도·정당정치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 16일 진보진영의 여러 싱크탱크와 경향신문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최장집 교수도 이를 다시 강조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결구도가 초래할 수 있는 파국에 대한 우려도 이러한 주장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사실 한국정치의 현실을 보면 이러한 지적은 매우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제도·정당정치의 주체들이 거리의 정치에서 표출되고 다수의 동의를 얻은 요구들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차원(국회에 재협상 관련 결의나 재협상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는 법안의 통과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동일한 주장을 거리의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대상을 잘못 찾은 느낌이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거리의 정치를 '일탈'적으로 보는 시각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리의 정치는 이미 '일탈'적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한국의 정치변화에서 계속적으로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리고 이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어떤 파국을 초래하기보다는 정치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1987년 6월항쟁, 2002년 효순·미선양 촛불집회, 2004년 탄핵반대운동 그리고 이번 촛불집회 등이 그 사례이다. 특히 최근에 이를수록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 인원이 참가한 가운데 평화적 방식으로 집회와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일탈적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정상적 정치과정으로 인정하고 그 자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도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은 다음 두가지 측면에서 그 필요성이 옹호될 수 있다. 우선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구들이 권력획득을 위해 정치의제들 사이의 위계적 질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정당정치로는 해소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거리의 정치 자체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정당정치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이란 면에서도 지난 10년간 정치권력이 적극적으로 시도했으나 넘어서지 못한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거리의 정치는 단순히 정당정치의 부재라는 문제점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촛불집회가 지닌 역동적 활력
물론 이러한 주장이 정당정치의 필요성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당정치의 발전이라는 것이 장기적 과제이고 당장 촛불집회를 특정한 정당운동과 연결하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당정치의 발전은 촛불집회의 직접적인 귀결이라기보다는 다른 여러 요인(역사, 사람, 전략 등)에 의해 결정될 문제이고 이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번 촛불집회가 제기한 도전에 적극적으로 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리의 정치가 정당정치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는 그 해방적 에너지가 지닌 발전적 가능성마저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미 보수진영에서는 촛불집회의 정당성을 부정하고자 하는 발언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17일 오전만 해도 '촛불장난'이니 '천민자본주의'니 하며 소설가 이문열이 앞장서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뒤를 이어 촛불집회를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런 발언들은 단순히 촛불집회가 제기한 주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집회 자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거리의 정치의 정당성 자체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그리고 끊임없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동맥경화 현상을 예방하고 없애기 위해,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실천의 가능성을 보장해줄 거리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갈 필요가 있다.
촛불집회의 성과를 정치축제의 광장으로 승화하자
필자는 앞으로 매년 6월을 정치축제의 달로 정하고, 명동도 좋고 시청앞 서울광장도 좋고 광주의 금남로도 좋고 부산의 서면로터리도 좋고 대전의 대전역 앞도 좋고 모든 지역에서 상징성이 있는 지역을 지정하여 '자유의 거리'를 선포하고 여기에서 모든 정치적 요구들이 평화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당장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재협상 문제를 둘러싸고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시점에서 한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리고 당장의 거리의 정치를 잘 진행하기 위한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더욱 절실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광장'을 지키기 위한 장기적인 고민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장기적인 좌표를 하나 제시하는 것이다.
이 역시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관계가 있는 고민이다. 1987년 6월항쟁은 6·29선언을 계기로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7월 9일 수많은 인파가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 참가하고 열사를 광주로 떠나보내기 위하여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한열 열사가 떠난 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고, 결국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를 따라 움직이다 광화문네거리(지금의 '명박산성' 자리)에서 발사된 최루탄(당시 지랄탄이라고 불렸던 다연발 최루탄) 앞에 순식간에 흩어졌다. 시청앞 광장의 상실은 당시 다양한 거리의 의제가 무대 뒤로 밀려나고 후보자가 중심이 되는 선거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을 견제하지 못했던 상징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번 촛불집회가 당장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못지않게(필자는 이미 커다란 성과를 거두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장을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지켜가는 것도 중요한 고민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현실화된다면 그 자체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진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 발전에도 중요한 공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008.6.18 ⓒ 이남주
[출처] 창작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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