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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짠돌이와 6만원

by G_Gatsby 2008. 7. 16.


2천원

함께 일하는 직원중에 짠돌이가 한명 있다.
구두쇠와 짠돌이는 가급적 멀리 하라던 인생선배의 조언이 있었지만, 이 짠돌이는 지방 출장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가끔 주변사람들에게 눈총은 받지만 맡은 업무만큼은 정말 꼼꼼하게 잘 해낸다.

회식이 있으면 늘 1차에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개별적으로 이차나 삼차까지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1차 회식비용은 공식비용이 되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것은 개인 지갑에서 각출을 한다.

이 짠돌이는 결단코 지갑을 연적이 한번도 없다. 술을 과하게 마신 날이면 택시비가 없다며 가장 만만한 내 지갑을 털어 간적도 제법 있다. 몇 년을 같이 지냈지만 짠돌이의 지갑색깔이 무슨 색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함께 지방출장을 오게 되면 아무래도 근무 시간이 좀 널널하다. 특히 장기 출장의 경우에는회사생활에서 맛보지 못한 늦잠과 게으름도 공식적인 기록에 남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짠돌이가 이발을 하고 왔다. 그리고선 오후 내내 투덜거린다. 이발비용이 2천원이나 올랐다는 것이다. 그게 무척 속상하고 억울한 것 같다.

투덜거리는 것이 듣기 싫어 2천원을 꺼내서 짠돌이에게 내밀었다. 그만좀 투덜거리라는 나의 의사표시이자, 직장 상사로서 무안함을 느끼라는 일종의 압력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냉큼 2천원을 받아서 챙긴다. 내가 좀 더 근엄하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못한 것을 두고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내 돈 2천원... 아깝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짠돌이와 6만원.

마침 급여 명세표가 우편으로 날라 왔다. 보통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2천원을 빼앗겨 심뽀가 고약해진 나는 부하직원의 급여명세표를 보고 말았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의 명세표를 본다는 것이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다. 보통 급여명세표에서 공제란을 유심히 보는데, 녀석의 공제란에 특이한 사항이 하나 있었다. 특별한 지출 60,000원.

몇 년전에 회사에서 어떤 계기로 불우이웃 돕기같은 성금을 모금한 적이 있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 정기적인 기부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의견이 분분해서 적극적인 의사를 가진 사람만 급여에서 빼기로 한 것이다. 사실 호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 매월 60,000원이라는 돈이 급여생활자에게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첫 달에 신청한 사람이 절반 정도 밖에 안되었고, 달이 갈수록 사람은 점점 줄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별다른 관심도 없고 기부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짠돌이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매월 60,000원의 돈을 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의 막내임에도 노모를 홀로 모시고 산다는 짠돌이 였기에 좀 의아스러웠다. 꼼꼼한 그가 공제금액을 모를 리는 없었다. 급여명세표를 전해주면서 회사에서 기부했던 것에 대해서 슬쩍 물어 보았다.

“뭐 60,000원 없어도 전 잘 살거든요. 그때 처음 도왔던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잖아요. 요즘도 점심 굶는 아이가 있다는게 좀 우습지 않아요?”

이 짠돌이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급여명세표를 받더니 지난달 보다 보험료가 2,700원 더 나왔다면서 본사에 전화를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를 고민한다. 짠돌이는 이래서 미워할 수 없나 보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대부분 우리는 그 풍경에 갇혀 살아가면서 세밀하게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정작 베품에는 인색하면서 보이는 면이 마음에 안든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베풀줄 아는 사람은 그 풍경속에서 늘 당당하고 아름답다.

내가 저녁을 산다고 이야기 하자 짠돌이는 고기 먹은지가 좀 오래되었다며 눈치를 본다. 그래도 오늘은 참 이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