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젤리피쉬를 본 사람이라면, 에드가 케렛이 그려내는 특이하고도 따뜻한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그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실만으로 그의 단편집에 호기심을 가질 것이다.
이제 40대 초반에 불과한 작가의 기묘한 상상력에 대한 찬사는 그치질 않는다.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그가 만들어내는 풍부한 감성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글과 영상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펼치는 천재적인 예술가임은 분명하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하면서 큰 기대를 했었다.
꽤 오래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을 보면서 느꼈던 신선한 상상력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분명 나의 취향에는 맞질 않는다. 그래서 참 많이 아쉽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판한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는 2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짐작할수 조차 없는 기묘한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서 흘러 나온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는, 자신만의 신념으로 버스 운전사의 소임을 완수하는 꽤나 고지식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정시 출발과 정시 도착이라는 원칙적 사회적 소신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그 원칙을 깨뜨리는 법이 없다. 굳이 융통성을 발휘해도 될법한 상황에서도 그는 절대로 신념을 어기지 않는다.
하지만 성실하고 착한 어느 청년의 첫 데이트를 위해서 그는 소신을 꺽어 버렸다. 첫 데이트에서 약속을 어기면 청년은 슬퍼할 것이고, 그것이 그 착한 청년 앞에 펼쳐질 사랑에 큰 걸림돌이 된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소신과 신념보다도, 한 젊은이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우선시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신념을 어겼다.
하지만, 청년의 첫 데이트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 바람을 맞고 슬픔에 잠겨 터벅터벅 버스로 걸어갈 때도, 버스 운전사는 자신의 소신을 어기면서 까지 그를 기다려 주었다. 마치 자신이 신의 거룩한 은혜를 베풀 듯이 말이다. 그로 인해 청년은 자신의 암울함을 감추지 못하고 모두에게 들켜 버렸다. 자신의 소신을 어긴 버스운전사는 청년에게 위로의 윙크를 건넨다. 하지만 청년에게는 어떠한 것도 위로가 될수 없었다. 신이 되고 싶었던 운전사는 이러한 이유로 결코 신이 될수 없었다.
아쉬움..
그의 단편집에는 다양한 이야기와 기묘한 이야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전혀 와닿지 않는다. 문자를 해독하는 나의 읽기 능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을 번역한 분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책의 흐름을 전혀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몇 번씩 읽어야 하는 고생이 있었다. 그리고 단순한 단어의 나열과 조사의 결합이 집중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은 부분에서 한글로 해석을 해놓아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철저한 단어의 조합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인지 도무지 그의 작품들이 전해주는 미묘한 감정을 느낄수 없었다. 이 점은 개정판을 통해서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석과 이해가 가능했던 그의 몇몇 단편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상상의 공간과 누구도 쉽게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만의 독특한 감성과 의식들은 특별한 느낌이다.
<돼지 부수기> 나 <엄마의 자궁> 같은 이야기는 참 독특한 느낌을 안겨다 준다. 모두가 어느 한곳에 집중 하더라도 각자의 시선마다 다양한 느낌이 존재하고, 또 어떤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이 되기도 한다.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특별함은 여기에 있다.
번역의 문제만 보완이 된다면 다시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도 젊은 그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입과 눈을 통해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꽤 긴 여운을 안겨줄 것이다. 그의 단편집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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