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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문화

[리뷰] 광기 - 미치지 않은자가 누구인가?

by G_Gatsby 2009. 12. 3.


쥐스킨트의 소설 ‘콘트라베이스’를 보면 소설의 주인공이 독자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마치 한 사람의 심각한 고민을 옆에서 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독백 형식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감정을 확실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소설 ‘광기’도 나에게는 그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쉴새 없이 지껄이는 듯한 자유로운 인칭의 활용은 그들의 이야기속에 빠져들어가기 충분했다. 다만 현실과 생각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듣는 듯 한 느낌도 함께 받는다. 그럼에도 소설 ‘광기’의 몰입도는 대단하며, 분산되어 있던 이야기들이 나중에는 하나로 모여진다.

소설 ‘광기’는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콜롬비아의 천재적인 작가의 작품이고,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인간의 내면에 미친 듯이 날뛰는 의식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 대한 찬사는 전혀 아깝지 않다.


콜롬비아의 아픈 현실에 바탕을 둔 소설이지만, 남미대륙의 아픈 역사를 자세히 알길이 없기에 작가가 말하는 사회적 광기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대를 이어오며 사회적 광기 속에 벌어지는 미쳐가는 인간이 느끼는 의식의 고통은 희미하게 나마 이해할수 있었다.

광기 - 비극의 시작.

소설에는 미쳐버린 세명의 사람이 나온다.
하지만, 읽어 갈수록 비정상적인 사람은 그 세명만이 아니라 그 주위를 머무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작가는 개인적 광기의 모습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연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도 있다고 본 것이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어릴 때 받은 충격으로 비정상적인 의식구조를 갖게 된다.
어릴적 받았던 누나에 대한 기억은 그의 의식 속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세상을 살면서도, 어린시절에 느꼈던 그 기억의 공간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즉, 그의 세계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쳐지는 묘한 경계선에 머물러 있다.

그의 광기는 친누나의 고통속에서 보았던 性에 대한 불편한 생각과 동성애에 대한 꿈,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끝없는 죄책감을 만들어 나간다. 그는 결국 자신의 의식이 만들어낸 경계선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육체적인 죽음으로 그는 사라졌지만, 그의 광기는 사라지지 않고, 그를 지켜봤던  딸들에게 이어지게 된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러한 광기를 물려받는다.
성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들과 자신의 가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남편과 언니의 불륜을 모른척 지나가야 했다. 그녀에게는 사실과 진실보다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잘 정돈된 화목한 가정과 계급의식이 더 중요하다. 그녀의 가족 모두는 구성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짓된 현실을 인정하며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들의 가족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그들의 세계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진실된 세상에 살면서 거짓된 세상을 만들어가는 집단적 광기로 만들어 진다.

그러한 가정속에서 아버지의 구타, 어머니의 절제되고 거짓된 세상속에서 살아온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어머니보다 훨씬 더 나아가게 된다. 대를 이어오면서 만들어진 광기는, 그녀를 결국 완전히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가족들의 광기는 그들의 약속된 거짓속에서 표출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광기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된다. 그녀는 확실히 과거의 기억과 현실속에서 오고감을 되풀이 한다.


광기 - 미치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라우라 레스트레포는 그녀의 소설을 통해서 끊임없이 의식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마치 옆사람에게 이야기 하듯이 말하는 그녀의 문체를 읽다 보면 누가 정상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소설 ‘광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들이 내뱉는 말을 통해서 광기가 만들어진 이유가 하나둘씩 밝혀진다. 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사회주의 운동이 확산되던 당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아픔을 안고 살아가던 상류사회의 고립된 의식도 표출된다. 폭력과 광기에 의해서 손상된 인간의 의식은 언제나 공허하고 슬프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주변의 사람들 역시 슬프다.

광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유전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경험한 적이 있는 사회적 광기는 개인의 의식을 파괴할 정도의 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파괴된 의식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고통의 절규가 소설에는 담겨 있다.

소설의 문체와 인칭이 상당히 독특하다.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것 같지만 3대를 이어오면서 만들어 지는 그들의 광기의 역사가 담겨 있다. 또한 분산되었던 시선이 하나로 묶여 진다.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설임에 틀림없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모두가 정신병자 같기도 하고, 모두가 지극히 정상인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도 어쩌면 이러한 광기에 전염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소설 ‘광기’에는 소름끼치는 섬뜩함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