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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희망가, 짬뽕국물 이야기

by G_Gatsby 2011.02.23

날씨가 많이 풀리긴 했지만, 남자의 얼굴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때가 많이 묻은 검은색 점퍼, 상표의 흔적마저 사라진 황갈색 운동화.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거칠은 머리카락, 그리고 말라붙은 광대뼈의 모습. 초라하게 구겨진 배낭과 덥수룩한 수염까지.

낡은 중국집 앞에서 꽤 긴 시간을 서성거린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찾아온 봄을 느끼기 위해 나왔던 나에게 남자가 그리고 있는 풍경은 추운 겨울이었다.

 

누군가 중국집의 문을 박차고 나왔고,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무엇이 그리 초조하고 불안한지 앉아 있는 남자는 다리를 계속 떨며 앉아 있다. 주인 인듯한 남자가 무언가를 이야기 하자 남자는 때묻은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주인에게 준다. 돈을 확인한 주인이 그제서야 물을 한잔 갖다 준다. 물을 마시면서도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불안한 듯 계속 다리를 떤다.

 


# 1

누군가는 우리 사회를 승자의 자만감이 패자를 유린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좀 더 나은 위치에서 출발한 불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오만한 사람들이 패자의 자존감 마저 빼앗아 가는 사회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의 증가와 높은 자살율을 근거로 내세웠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달빛 요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참 먹먹했다. 살아서 부르던 그의 노래에는 무심했지만 그가 떠난뒤 남겨 놓은 노랫말들은 마음을 참 아프게 했다. 스스로를 마이너리그라고 불렀던, 당당했던 그도 생활고와 무관심은 넘기 힘든 고통이었다. 밥과 김치를 먹고 싶었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도,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이다. 꿈을 펼치라고 세상은 이야기 하지만 그 꿈을 펼칠만한 자그마한 공간과 배려조차 허락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약자와 패자로 구분되는 세상 속에서 올 겨울은 유독 추웠다. 남의 일이라고 하기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풍경들이 너무도 선명하다. 마음 마저 가난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찌 봄을 기다리며 희망가를 부를수 있을지 모르겠다. 봄을 재촉하는 햇살은 따사롭지만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다.


 

# 2

돌아오는 길에 남자를 다시 보았다.

남자는 붉은 짬뽕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쾡한 눈에 얼마간의 생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천천히 짬뽕 국물을 마시면서도 여전히 다리는 떨고 있었다. 남자는 마지막 몇 모금을 남기고 허리를 폈다. 남자의 낡은 점퍼도 함께 펴졌다. 물은 한모금 마시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다시 꺼냈다. 구견진 지폐 더미에서 몇장의 돈을 꺼내 탁자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 보며 온기를 느끼는 듯 했다.

 

한참을 그렇게 허리를 펴고 가만히 있었다. 무언가를 먹었다는 포만감이 좋은지, 아니면 소화가 안되어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그릇을 들고 남은 국물을 입에 넣었다. 식은 짬뽕 국물이 목덜미로 천천히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으깨어진 엄지손톱이 보이고 남자의 핏발선 눈동자가 보였다. 울컥하는 마음에 나는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추운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봄은 다시 찾아 오고 있다.

세상은 다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진실은 아직도 추운 겨울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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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5

  • Favicon of http://slimer.tistory.com BlogIcon Slimer 2011.02.23 11:35

    승자가 아니면 패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보다 남들과의 비교되는 인생을 생각하여야 하고, 남이 먹으면 나는 못먹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배되어야 하니까요...
    답글

    • Favicon of https://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11.03.09 00:03 신고

      세상의 현인들은, 삶은 승패가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을 하시죠.^^
      짬뽕국물을 먹으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아저씨의 눈빛이 아직도 선합니다.
      삶은 과연 아름다울까요.

  • Favicon of https://befreepark.tistory.com BlogIcon 비프리박 2011.02.25 09:23 신고

    승자가 독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
    이 사회는 정글인 것이죠.
    경쟁에서 탈락하면 그게 곧 죽어 싸다는 뜻이 되는 한
    이 사회는 강자만 살아남는 밀림인 것이죠.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도,
    모두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는 요원한 걸까요.
    답글

    • Favicon of https://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11.03.09 00:04 신고

      요즘, 인간다운 삶이 무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인간은 참 감정적인 동물인데 말이죠.
      울컥 하고 눈물이 날뻔한 장면이었습니다..
      꽤나 충격적이어서 그 느낌이 오래 갔네요.

  • Favicon of https://earthw.tistory.com BlogIcon 지구벌레 2011.02.28 15:38 신고

    정글의 짐승들도 자기 배만 어느 정도 다른 생명들을 함부로 해치지 않죠.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쌓아두지도 않구요.
    정글보다 더 험한 세계가 바로 우리네 이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약육강식보다 더 치열한 서바이벌을 견디며 살아가는 약자들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그 경쟁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거겠죠.
    봄은 오는데 희망도 함께 와야할텐데요. ~~
    답글

    • Favicon of https://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11.03.09 00:05 신고

      진부한 이야기지만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이라는걸 새삼 느낍니다.
      아저씨가 마지막 짬뽕국물을 들이마시기 전에 했던 심호흡도 깊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죠.^^
      삶의 풍경에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graywind.tistory.com BlogIcon 깊은숲 2011.03.09 21:05

    잘 지내시죠? 잘 지내셨으면 합니다... ;)
    가끔 올리시는 포스팅 보고 있습니다. 안부 여쭙고 갑니다.
    답글

  • Favicon of http://nepomuk.tistory.com BlogIcon 네포무크 2011.03.15 16:05

    그 아저씨에게는 짬뽕 한그릇이 현실을 붙잡는 끈일까요?
    그렇다면 제발 놓지 마시고 봄을 맞이 하셨으면 하네요.
    잘 봤습니다~ ^^
    답글

  • Favicon of http://zihuatanejo.kr BlogIcon 지후아타네호 2011.03.20 17:25

    무거운 고민입니다.
    동물의 세계가 그러하듯 사람들의 세계에서 약육강식 또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정글의 사회가 과연 괜찮은 건지 맞는 건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거든요. 늘 고민해야겠죠. 늘 생각해봐야 하고.
    답글

    • Favicon of https://akdong2k.tistory.com BlogIcon G_Gatsby 2011.05.12 20:03 신고

      세상속의 모습과 세상밖의 모습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것 같아요. 인간사가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사는것이 순리라고는 하지만, 그 기본적인 법칙 조차 힘겨운 사람들이 많다는걸 느꼈습니다. 가슴이 아프네요.

  • Favicon of http://www.funnygames.co.uk/power-rangers-games.html BlogIcon power rangers 2011.07.15 17:58

    잘 지내시죠? 잘 지내셨으면 합니다... ;)
    가끔 올리시는 포스팅 보고 있습니다. 안부 여쭙고 갑니다.
    답글

  • 2011.07.16 20:49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Favicon of http://socialstory.kr BlogIcon 권팀장 2011.08.21 01:18

    잘 지내시고 계시죠? ^^
    한동안 블로그 업데이트가 안되시는 것 같아서, 소식이 궁금하긴 하지만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리라 생각하면서...발도장 오랜만에 남기고 갑니다.

    막바지 여름 건강히 잘 보내시구요,
    선선한 가을이 올때쯤 블로그 컴백부탁드려요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