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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끄적끄적

흔적4

by G_Gatsby 2019. 9. 9.

원칙.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원칙이 조금 더 공고해졌다. 누군가에 의해서 보여질것, 누군가에 의해서 들려질것, 누군가에 의해서 판단하게 될것. 이러한 것들에서 작게 나마 빠져나올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습기를 머금은 여름숲이 주는 작은 '깨달음'은, 산사를 빠져나오는 작은 길을 따라 느리지만 하나의 방향으로 굳어졌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청량감이었다. 습하고 무더운 것들로 부터 빠져나오면서 느끼는 해방감.

그리고 내 삶을 바라보는 또다른 '눈'이 생겼고, 그로 인해 삶의 또다른 원칙도 만들어졌다.

 

 

칠층모전석탑.

49제를 치뤘던 그곳의 아침이슬을 기억한다. 죽은자와의 마지막 인연을 끊고 하늘로 보내는 시간이었다. 노승은 살아있는 자를 위해서 '윤회'를 이야기 했고, 어린 손자는 미처 덜 자란 풀밭을 뒹굴며 웃었고, 노란 나비는 사찰 주변을 오랜 시간 맴돌았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기억할께요" 차갑고 낯설기만 하던 그분의 손을 잡을때 느꼈던 두려움도 이곳에서 다 버렸다. 이제 마음속에는 어린 내손을 잡아주던 따뜻한 온기만 남았다. 모든 것들을 태워버리고 뒤돌아오던 그곳에서 유독 노랗게 물들어가던 풀꽃을 보았고, 그 속에 잠긴 아침 이슬도 보았다. 이름 없이 왔다가 이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야기 하시던 그 분의 마지막 모습을 그곳에서 보았다.

 

거북목.

운동 부족이라는 '자발적 질병'을 갖고 있는데, 요즘은 책상에 앉아 1시간을 버티기가 힘들다. 누군가는 '요가'를 배우라고 했고, 누군가는 '폼룰러'를 하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고가의 매트리스를 권했다. 책을 많이 보거나, 일을 열심히 해서 얻은 질병이라면 괜찮을텐데, 원인은 내 몸을 잘 쓰지 않는 게으름이라는게 문제다. 여기 저기 아픈곳이 조금씩 늘어나더니 이제는 잠자는 것이 힘들정도로 심해졌다.

"이제 나이가 드셔서 조심하셔야 해요" 물리치료사가 던져주는 말 한마디에 웃음이 나왔다. 벌써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병원문을 나와 마주친 뜨거운 햇살 속에, 나는 내 나이에 맞는 "쭈쭈바"를 하나 사서 입에 물었다. 나도 나이를 먹는게 아니라, 나이를 드시게 되었구나. 여름이 다 가고 있고, 나의 거북목은 전진과 후진을 번갈아 하며 여전히 나를 고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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