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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_Gatsby84

일년만 친구 녀석이 느닷없이 결혼을 하겠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며 선언을 했던 녀석이기도 했고, 몇 해전 모임에서 보았을 때에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녀석이라 조금은 의아스러웠습니다. 꽤 오랜만에 결혼을 핑계로 녀석과 마주 앉아 술을 한잔 했습니다. 녀석은 결혼 소식을 전하느라 얼굴이 빨개졌고, 못 먹는 술을 먹느라 나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 자기 선언 녀석에게는 꽤 오래 전부터 독특한 술버릇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비관주의자지만, 술만 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비관주의자가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어설프게 쇼펜하우어에 심취한 이후론 친구들과의 대화도 뜸해졌고, 군대에 다녀온 이후론 인도철학에 심취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씨 만은 착한.. 2012. 3. 16.
나는, 나의 첫사랑 회색 나무 아래에 놓인 노란색 벤치 위에 한 노인이 앉아서 무언가를 읽고 있습니다. 한가한 주말 오후, 겨울이 끝자락에 마주선 공원의 모습은 쓸쓸함도 분주함도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시간 속에 정지해 이는 느낌, 노인은 자신을 닮은 늙은 회색 나무 아래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오랫동안 앉아 무언가를 읽습니다. 마치 오래된 엽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풍경입니다. 한참을 걸어 노인의 곁을 지나 갑니다. 노인은 그제서야 책을 덮고 불청객을 바라 봅니다. 노인의 손위에 있는 것은 자그마한 시집이었습니다. 고은 시인이 쓴 '첫사랑'. 돋보기 너머로 불청객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맑고 깊습니다. 방해가 될까 서둘러 자리를 피합니다. 노인은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다시 책을 봅니다. 차가운 바람이 다시 공원에 흐르고,.. 2012. 3. 13.
아는지 우연히 찾은 작은 도시의 작은 골목길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문득 가슴을 파고 들어오던 노래. 아마도 그날은 몹시 쓸쓸한 겨울비가 내렸었고. 얼어 붙기 직전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웠던 것 같다. 잊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잊혀질 인연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고. 시간은 몹시도 더디 흘렀을 것이며. 미련은 몹시도 아렸을 것이다. 인연의 끝은 언제나, 머뭇거리는 시간이 있었고 불편한 대화가 오고 간다. 그리고 나선 긴 침묵이 이어지고 그 사이마다 아쉬움과 기다림의 짧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나는 바다에게 줄곧 인연의 깊이에 대해서 물었고, 바다는 나에게 짧은 인연의 추억만을 던져주었다. 사랑이 뭔지 알 수 있을까 영영 모를 수 있어. 하지만 이별은 알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또 아픈.. 2012. 3. 11.
'노안'과 붕어빵 게으름에 미루어 두었던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올 초 결막염을 심하게 앓은 다음부터 눈이 그리 맑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 눈을 감았다가 뜨게 되면 좀 어지러운 증세가 있었습니다. 큰 불편은 없었는데, 추운 겨울 동면에 들기 전에 한번 검진을 받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병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우리 주변에 참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기계에 얼굴을 갖다 대고 눈을 들이 댑니다. 젊은 의사는 눈을 크게 뜨라고 재촉합니다. 엄지발가락 끝과 양쪽 눈에 최대한 힘을 주었습니다만, 젊은 의사는 마음에 들지 않나 봅니다. 몇 번을 재촉하다가 구조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냥 포기합니다. 눈이 작은 것이 죄는 아니지만 괜히 미안스럽습니다. 젊은 의사는 무미건조한 말로.. 2011.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