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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본후.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Cherry Blossoms ) - 사랑, 하나의 존재로 기억되다.

by G_Gatsby 2008. 12. 3.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사랑이라는 오묘한 감정은 결코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언제나 실체가 있는 그 무언가에 이끌리게 되고, 그 속에 담겨진 진실과 존재를 알아 가는데는 익숙하지 않다.

도리스 되리감독의 영화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은  보여지는 것에 감추어진 보이지 않는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인생은 "한사람을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 이라는 어느 로맨티스트의 말이 절실하게 와닿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사랑에서 흥미를 잃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영화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일깨우게 해줄 것이다.


" 만년설이 있는 후지산은 늘 변함없이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날씨에 따라서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한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 존재는 늘 그자리에 있지만 우리의 시각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다》

여기 한 노부부가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그들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시간의 속도는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는다. 장성한 자식들은 대도시로 모두 나가고, 그들은 한적한 풍경과 함께 늙어 갔다. 너무도 규칙적인 삶의 리듬이 지루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에게 큰 일이 생겨 버렸다.


" 반평생을 함께 했던 내 남자. 이 남자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제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다."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때 두려움을 느낀다. 이 여자는 사랑하는 남편이 죽는다는 것과, 그것을 알릴수 없는 현실에 슬퍼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남편이 죽기 전에 행복한 추억을 안겨 주겠노라고. 그래서 그들은 평소에 하지 않았던 여행을 떠난다.



"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험이다.
함께 떠났으나, 결국 혼자 돌아오고 마는 여행이 되고 만다. "


그들이 사랑하면서 세상에 남겨 놓은것은 무엇일까.
여자는 고민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자식들을 찾아 나선다. 그것은 그들이 만들었던 사랑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젊음은 늘 시간을 바삐 움직인다. 그들의 자식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세상의 경쟁속에서 그들의 자식은 살아가야만 했다.  자식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 사랑의 실체가 과연 이런것일까? 그들의 사랑은 살아 숨쉬는 생명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자신이 곧 죽을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남자.
이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은 간절하다. 남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그녀의 사랑이 이렇게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남자가 말한다.
아이들이 어릴적 함께 갔었던 해변을 보고 싶다고 말이다. 그곳엔 그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고, 젊고 열정적인 그들의 사랑이 있었다. 자식들에게도 짐이 되어 버린 이 노부부는 그렇게 해변으로 떠난다.


" 사랑은 이렇게 하나가 되어 먼 풍경을 바라 본다 "

남자는 지난 시절을 회상하고,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생각해 보면, 수없이 많은 나날들을 함께 했지만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익숙하다는 것은 때로 이렇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잊어 버린채 살게 만든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남자를 기억하고 싶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 있기에 느껴야 하는것이며, 이 남자가 가고 난 다음에도 가슴속에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춰 본다. 그와 그녀가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삶에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해변을 거닐던 노부부의 모습은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리고 그날 밤.
이 남자를 걱정하던 여자는 예고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 사랑, 존재를 깨닫다 》

남자는 당황스럽다.
그녀가 떠난 자리가 허전하다. 익숙한 풍경이 낯설어 진다. 그는 깨닫는다. 그녀가 그와 하나가 되어 있었음을.
남자는 여자를 다시 기억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입던 옷과 모습을 하나씩 다시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채울수 없는 그리움이 되어 그를 슬프게 만든다.

남자는 하나를 기억해 낸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해 낸다. 그녀가 진정 원했던 삶과 꿈이 무엇이었는가를 기억해 낸다.
그녀는 부토 무용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후지산을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남자는  다시 오열한다.

그는 결심한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후지산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익숙한 모든 풍경을 버리고, 그의 막내 아들이 있는 일본으로 떠난다.


" 이젠 볼수 없어도, 사랑은 그의 가슴에 남아 있다. "

영화는,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여자와 남자의 슬픔을 이야기 한다. 그것은 서로의 외로움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이 보여지는 실체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자리잡아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 도착한 남자는, 떠도는 부토 무용수 소녀를 만나게 된다.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뭔가 익숙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사랑하던 그녀가 늘 꿈꾸던 부토춤 이었다.


" 부토춤은 그림자와 하나가 되는 춤이다. 실체와 존재가 하나가 되는것.
그것은 그와 그녀가 하나가 될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이제 남자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만이 존재한다. 그녀를 위해 후지산을 바라 보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꿈이었지만, 이제 그의 꿈이 되어 버렸다. 그와 그녀는 이렇게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소녀와 함께 후지산을 보러 떠난다.



" 후지산을 늘 볼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좋은날에만 볼수 있는 행운이 생긴다.
실체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도 그러한지 모른다."

후지산은 나타나지 않는다. 며칠을 기다린 그는 초조해 진다.
그리고 밤이 되어 아프기 시작한다. 온몸에 열이나고, 부들부들 떨려온다. 그는 고통에 떤다.
갑자기 그에게 뭔가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것은 분명한 직감이었다. 그는 아픈몸을 이끌고 창문으로 다가간다.
마침내 후지산이 보였다.



" 드디어 그와 그녀는 하나가 되었다. "

남자는 후지산을 바라보며 부토춤을 춘다. 그것은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었다. 그의 가슴속에 있는 그녀도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제 사랑이 원하던 것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실체와 그림자가 되어 밤새 부토춤을 추었다.

후지산에 해가 떠오르고, 시한부 인생을 살던 남자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을 결코 자식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영원함을 꿈꾸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부토춤을 추던 어린 소녀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분명히 이해했다. 혈육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의 깊이를 이해했다.

이제 부토춤을 추던 어린 소녀는 다시 춤을 춘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들과 소통한다.



"벛꽃은 화려함을 꿈꾸며 긴 세월을 기다린다. 그리고 우리는 벛꽃의 화려함을 기억한다. 
어쩌면 우리는 보이는 것만 기억려고 하는지 모른다. 그 실체속에 숨어 있는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말이다.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감독 : 도리스 되리
출연 : 엘마 베퍼, 하넬로레 엘스너, 아야 이리즈키
2008년 독일작

영화는, 우리들의 인생에서 기억해야 할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길 바란다. 【파니핑크】에서 말하던 난해하고 도전적인 모습은 이제 보다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 왔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멜로디와 동적인 삶과 정적인 생활이 교차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각적으로 화려하며 느끼기를 강요하는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잔잔하게 바라보며 서로가 느껴야 하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서 깊이 이해하며,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잔잔한 음율과 함께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