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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본후.

하녀 - 씁쓸한 무력감

by G_Gatsby 2010. 7. 11.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를 드디어 보았다.
그동안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알송달송한 느낌들이 바로 무력감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영화 '하녀'를 통해서 그걸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그의 영화 '오래된 정원'에서도 느낄수 있었던 야릇한 느낌이 '하녀'를 통해서 구체화된 느낌이다. 물론 이 둘의 영화가 같은 연장선에서 이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하녀'는 최고의 배우들이 만든 영화다. 칸을 통해서 유명해지긴 했지만 전도연이정재, 윤여정으로 이어지는 배우들의 무게는 남다르다. 영화에 몰입할수 밖에 없는, 그래서 조금은 따분한 일상의 모습들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긴장감으로 쉽게 바뀐다.



원작에서 조금은 어긋난 임상수표 '하녀'는 그야말로 쇼킹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불쾌하기 짝이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물의 시선 - 등급을 나누다.

영화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 관점이 달라진다.
영화속 인물은 사회적 등급이 확실히 나뉘어 있다. 만들어진 인간의 등급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들이 서로를 바로보는 관점 또한 확연히 다르다.

사회적 최상류층에 속하는 남자. 그리고 그의 여자 해라.
폭이 크지 않지만 그들 사이에도 엄연한 계급적 질서가 존재한다. 가부장적 가정이 갖는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의 질서가 존재한다. 자기의 아이를 유산 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장모에게 대하는 훈의 태도를 보면 알수 있다.
훈은 모든걸 가진자를 대표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자기 밖에 없다. 엄숙한 권위와 돈의 위력은 훈에게 세상의 모든것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의 모든 행동은 정당화 된다. 그에게 도덕적 타이름도, 인간적 감정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것 까지도 그의 모든 행동은 정당화 된다.



집사로 나오는 '병식'의 시선도 중요하다.
그녀는 최상류층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에게 충실히 복종하는 계급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을 갖고 있다. 자신도 낮은 등급 출신이라는 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다. '은이'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제일 먼저 문을 박차고 나간 사람도 '병식'이다. 높은 등급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모든걸 묵인해야 하는 존재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주인공 '은이'는  낮은 등급의 인물이다.
평범하게 살아온 은이에게 보여진 최상류층의 모습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순진하게 인간의 등급을 이해하지 못했다. '훈'의 아이를 임신하고도 모정에 집착한다. 자신이 결코 행복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힘의 논리에 철저히 유린당하고도 그것을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여자다. 그녀는 평범하고 순수하고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이다. 



훈의 딸로 나오는 아이의 시선도 중요하다.
어린 아이의 시선은 음모와 갈등 속에서도 가장 순수한 시선을 만들어 낸다. 아이는 직접 보고 느낀것을 순진하게 말한다. 하지만 아이 역시 훈의 딸이다. 그녀 역시 성장하면서 훈이 가진 모든것을 물려받게 된다. 계급은 이어지고 그들은 붕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수의 끝 - 무력감

영화가 시작되면 알수 없는 여자의 자살 장면이 나온다.
북적되는 시장통에서 한 여자가 자살을 한다. 모두가 바빠 움직이며 살아가는 그곳에서 한 여자의 자살은 큰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그녀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밥 벌어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일상에 불과하다.

훈에게 버림받고 아이마저 잃어 버린 '은이'가 결심한 마지막 방법은 자살이다.
그것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장렬하게 죽는 방법을 택했다. 인간의 본성 마저 포기한 그들에게 할수 있는 '은이'의 마지막 저주 였다.

'은이'가 목을 메고 몸에 불을 지르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그들의 비도덕한 행동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그것도 그들이 살고 있는 집안에서 만들어 내는 여자의 저주다. 사랑에 대한 미련도, 아이에 대한 미련도, 삶에 대한 미련도 모두 버렸다. '은이'가 할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의 처음에 나온 알수 없는 여자의 자살 장면과 일치 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

하지만 은이의 복수는 그것이 다였다.
은이가 죽고 난뒤에도 훈과 해라가 만들어가는 가정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똑같이 화려한 일상이 만들어 지고 새로운 '하녀'가 등장한다. 아무도 '은이'를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은이의 죽음을 지켜본 훈의 어린 딸만이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혀질 것이다.

하녀
감독 임상수 (2010 / 한국)
출연 전도연,이정재,윤여정,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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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도 꽤 불쾌했다.
은이의 복수에 대한 후련함도 없었다. 그저 나약하고 무력한 '은이'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 까지 했다. 대단한 복수극이 펼쳐지길 기대한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쩌면 임상수 감독은 '하녀'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게 아닌가 싶다. 어쩔수 없는 무력감, 돈 앞에 무릎을 꿇는 냉혹한 현실, 아무것도 도울수 없는 방조자, 이미 나뉘어 버린 사회적 계급의 세습.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하녀'를 통해서 불수 있었다.

불편하지만 영화가 나쁘지는 않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을 뿐 아니라 임상수 감독에게 새로운 느낌을 받을수 있었다. 쇼킹한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본 느낌이다. 사랑도 사고 팔수 있는 현실, 나약한 자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마지막 장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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