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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본후.

킹스앤퀸, 존재에 대한 이기적인 행동들.

by G_Gatsby 2008.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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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앤 퀸(Kings and Queen)
출연 : 매티유 아멜릭, 엠마뉴엘 드보스
2004년 프랑스작.



사실 이 영화를 보게된 계기가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 때문이다.
영화속 장 도미니크 보비로 나왔던 매티유 아멜릭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영화는 막연하게 좀 어렵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잠수종과 나비"는 비교적 쉽게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보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15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이 말해주듯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국내에는 로멘틱 코미디물이라고 소개가 되었던데 단연코 코미디물은 절대 아니다.
매티유 아멜릭이 좀 친숙하게 느껴질뿐, 엠마뉴엘 드보스 라는 여배우도 생소했고 극중 인물들의 공허한 대화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쉽게 이해할수 있는건 아니지 않은가. 처음에 조각처럼 흩어졌던 장면들이 하나가 되면서 서서히 무언가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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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의 나이에, 아들 하나를 둔 노라. 그녀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20살때 아이를 가졌고 남편은 죽었다. 이후 이즈마엘과 몇년간 동거를 했지만 헤어졌고 다시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 이제껏 만났던 남자와는 다르게 매너도 훌륭하고 돈도 많은 부자다.

30대 중반의 이즈마넬. 그는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연주하는 연주가다. 노라와 몇년간 동거를 했지만 그에게 여자는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지는, 영혼이 없는 존재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지만 여동생은 자기를 미쳤다고 생각한다. 시간도, 돈도, 여자도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그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 삶속에 잊혀졌던 왕과 왕비의 재회, 지난 기억은 되살아 난다."

영화는 노라와 이즈마엘을 비추며 서로 헤어지고 난 이후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된다.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방문했던 노라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대장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그녀에게 익숙한 것들이 하나둘씩 떠난다. 첫번째 남편이 그랬고, 이즈마엘이 그랬고, 이제 아버지 마저 떠나려 한다. 그녀의 존재를 인정해 주었던 주변의 것들이 하나둘씩 떠난다. 그런 그녀는 당혹스럽다.

이즈마엘은 자기를 미쳤다고 신고한 사람들에 의해서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는 수표를 남발하고 오케스트라에서도 자기 마음데로 연주한다. 모든게 엉망이다. 그는 구속이 싫다. 스스로의 자유로움에 맘껏 취하고 싶다. 그에겐 정신병원은 너무 가혹한 구속이다.

노라와 이즈마엘의 서로 다른 장면들은, 노라의 아들을 입양하는 문제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그리고 노라의 존재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설명 해 준다.

제목이 Kings and Queen 이다. 왕들과 여왕, 뭐 이런 뜻인데 영화를 보면 여왕은 노라가 맞다. 그렇다면 왕들이란 어떤인물일까.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질까 궁금했다.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 무렵 조금씩 제목의 의미가 알듯 말듯 하게 다가온다.
왕은 노라의 삶을 지배하는 정신적인 권력을 상징하고, 노라에게는 포근한 안식처를 뜻한다. 여왕은 한명의 왕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노라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죽은 아버지가 노라에게 남긴 불쾌한 유언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노라, 그녀가 가졌던 왕들의 죽음과 몰락"

노라에게는 아버지의 존재는 첫번째 왕이었다. 즉 노라의 성장기간동안 노라의 삶을 보살피고 지배했고 노라가 의지할 수 있는 포근한 안식처였던 것이다. 노라는 아버지에게서 여동생에 대한 사랑을 혼자 독식해 버렸다. 아버지라는 굳건한 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받고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한 노라는 죽어가는 아버지가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산소공급을 중단해 버린다.
아버지의 유언에 남겨진 노여움은, 이러한 노라의 이기적인 생각들을 꾸짖고 있다.

노라가 20살때의 첫사랑 피에르도 그녀의 왕이었다. 철없는 시절 함께 사랑을 나눌때도 노라는 피에르에게 자신의 존재가 완벽하게 자리 잡기를 원했다. 그녀를 안아주지 않고 친구들고 놀고 늦게 들어온 피에르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잘 알수 있다. 그녀의 이기적인 마음은 피에르가 분을 참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는것을 방관하는것으로 나타난다. 그녀에게 피에르는 왕이었지만 왕의 모든것을 차지하려고 하는 이기심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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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의 아들 엘리어스도 그녀에게는 왕이었다. 죽은 피에르의 성을 지켜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나 엘리어스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엘리어스에의 모든것을 차지하고 싶었다. 그런 엘리어스가 동거남인 이즈마엘과 친하게 지내고, 새롭게 결혼하려고 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 엘리어스를 이즈마엘의 아들로 입양 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노라의 사악함은  무섭기까지 하다.

이즈마엘도 노라의 왕이었다. 노라는 이즈마엘의 자유분방함을 좋아했고 사랑해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이즈마엘의 자유로운 생각들을 수용하지 못한다. 이즈마엘에게는 노라가 모든것이 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는 이즈마엘과 엘리어스의 긴 대화를 보여준다. 정신병 환자인 이즈마엘가 나이어린 엘리어스에게 전해 주는 긴 대사는, 영화의 본질을 말해준다. 그리고 긴 대화가 끝나고 이즈마엘과 엘리어스를 기다리는 노라를 비춘다.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이기심, 그것은 타인의 삶을 바꾸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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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힐듯 말듯 아른거리는 관념의 존재들. 이 영화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노라라는 인물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애쓴다. 우리는 주변의 존재들을 장악하고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주변의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 노라의 이기적인 생각들이 그가 거쳐왔던 여러명의 왕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지만 정작 노라는 이것을 잘 모르는 듯 하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애써 불태우려 하는 노라의 모습은, 스스로 부끄러운 감정을 가지지만 인정하기 싫은 우리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