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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문화

정은임 아나운서와 고공크레인에서 바라본 세상

by G_Gatsby 2008. 5. 17.


재벌을 위한 경제정책을 내놓는 대통령.
노조활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노동부 장관.
언론을 검열 하려는 방통위 장관.
삼성의 은닉재산이 수조원.
해결되지 않는 이랜드 사태를 보면 참으로 갑갑하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가 실제로 850만명. 전체 노동인구의 55%가 비정규직이다.
자본의 가치가 사람들을 죽여 가고 있다.
갈수록 진실은 감추어 지고, 공허한 구호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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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22일 방송분]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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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관련글] 마지막 아나운서 정은임과 임을 위한 행진곡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했습니까? 21년차 노동자 기본급 105만원, 손에 쥐는 건 80만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청와대, 노동부, 국회의원 누구하나 코빼기도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원을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걸 그랬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책봉 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부자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부자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회장님이 재계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사교육비로 한 달 수천만원을 써도 재산은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한 달 100만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고공 크레인 위에서 자살한 고,김주익 열사 추모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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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휠리스 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준엽야, 혜민아, 준하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 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 가신 부모님과 막내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2003년 9월 9일 김주익
고 김주익씨의 유서中 


[2003년 11월 18일 방송분]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 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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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 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굉장히 비난 많이 받았어요. 나더러 노동자에 대해 뭘 아느냐. 육체노동자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뭘 아느냐고 이야기하더군요. 거기에 방송이나 언론의 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 세상은 마이크나 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계급적 기반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거야말로 정말 무시무시한 SF 영화 같은 세상 아닌가요.
모든 것이 나의 물적 좌표에 따라 바둑판처럼 이미 짜여진 세상. 너는 중산층이고, 한 달에 얼마 버니까 얼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라는 거죠. 그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 손배·가압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보면 괴롭고, 고민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난 비록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할 수 없나요?
왜 '8학군 기자들'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방송국에도 정말 8학군 출신 기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뉴스에서도 시선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돼요. 노동자, 농민 이야기는 그들의 생리나 환경과 맞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눈도 돌리지 않고. 말은 심각하지만, 그게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혀 심각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옆에서 투명인간화되어 버리는 청소하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인데." [정은임의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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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정은임 추모사업회(주) www.worldo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