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농민의 자살 소식을 또 들었다. 쇠고기 협상 타결이후 3번째 일어난 자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얼마나 서러웠을까. 소리높여 울어도 들어주는 사람없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에게는 이땅에서 사는 것이 유죄였다.
[관련글] 서민으로 산다는 것 - 40대 가장의 이야기
벌써 13년이 넘었다. 사회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시절. 늦은밤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갸날픈 음성이 있었다. 사회가 무척 혼란스러웠던 시절, 철거민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지고, 성장이라는 빛속에 감추어진 그림자가 외면당할때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연을 소개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었다.
당시 이런 노래를 방송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말이다.
사람이 그립다는것이 이런 느낌일까.
그녀가 살아있다면, 오늘같은날 어떤 말을 했을까..
그녀를 추모하며 김세윤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녀는 이시대의 마지막 아나운서다"
[관련글] 정은임 아나운서와 고공크레인에서 바라본 세상
[1995년 "임을 위한 행진곡" 방송분]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 정은임 입니다.
신대철 시인은 이미 20년 전에 이땅에서 사는 것은 무죄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의 시에서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이땅 어느곳에서는 유죄라고 합니다. 저희 청취자 한분이 그 심정을 노래하셨네요.들어 보시겠어요.
시를 쓰고 싶은 날
비내리는 철거촌에서 전 수편의 시를 썻습니다.
시를 쓰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도시 빈민이었던 우리집은
막내인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대학생이 된 제가 어느날 간 철거민 대회에 많은 동네분들이 오셨더랬습니다.
금호동, 전농동 봉천동, 하나같이 제가 식구들의 입을 통해 듣던 추억의 동네였습니다.
그 금호동 페허의 마을에서
더이상 끝닿을때 없는 하늘밑 마을에서
제 오빠들의 유년의 보았습니다.
쓸려져 나간 꿈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힘없는 강아지가 ..
높게 쌓여진 철탑이..
타이어로 엉성하게 버티고 있는 그들의 바리케이트가..
때맞춰 내리는 비가 ..
유린당한 그들의 삶이..
저에게 시를 쓰고 싶게 했습니다.
그러나 시를 쓸수 없는 날..
전 차라리 싸우고 싶습니다.
신청하신 곡은 영화 <파업전야>의 '임을 위한 행진곡'. 금요일 첫 곡이었습니다. 천리안으로 어느 분이 이런 글을 올리셨네요. 요즘은 신문에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국내뿐 아니라 세계가 온통 아수라장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슬퍼요....우리 늦기 전에 시작합시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거대한 폭포가 일듯 우리 한 사람의 힘이 점점 파문을 일으키면 뭔가가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셨죠?
Wake up, my love, beneath the midday sun,
일어나요,내 사랑,한낮의 태양아래
Alone, on-ce more alone,
홀로,다시한 번 홀로
This travelin' boy was on-ly passing through,
이 여행중인 소년은 다만 지나쳐 갈 뿐이야.
But he will always think of you.
그러나, 그는 항상 당신을 생각할 거야.
One night of love beside a strange young smile,
As warm as I have known,
하룻밤의 사랑이 내가 알고있는 가장 따뜻하며 조금은 야릇한 젊은미소를
짓고 있어.
A travelin' boy and on-ly passing through,
But on-e who'll always think of you.
여행하는 소년은 그저 지나칠 뿐이지만 그는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Take my place out on the road again,
나의 공간인 길 위로 다시 나가자!
I must do what I must do,
나의 해야 할 일을 나는 반드시 해야만 해.
Yes, I know we were lovers but a drifter discovers...
그래, 우리는 연인이지만,표류중인 탐험가들인 것을 나는 알아!
A travelin' boy and on-ly passing through,
But on-e who'll always think of you.
여행중인 소년은 그저 지나쳐 가지만, 그는 항상 당신을 생각할거야!
Take my place out on the road again,
나만의 공간인 길위로 다시 나가자.
I must do what I must do,
나의 해야할 일을 나는 반드시 해야만 해!
Yes, I know we were lovers but a drifter discovers
That a perfect love won't always last forever.
그래, 우리는 연인이지만 길잃은 탐험가인 것을 나는 알아
그 완전한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I won't say that I'll be back again
나는 다시 돌아온다고 말하진 않겠어!
'Cause time alone will tell,
다만 시간이 말을 할 뿐이니까!
So no good-byes for on-e just passing through,
But on-e who'll always think of you.
그래서 스쳐가는 누군가에게 안녕이란 말은 하지 않을래!
다만 누군가가 당신을 항상 생각하고 있을거야!
-- no good-byes
안녕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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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타임머신을 타고 80, 90년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광우병 쇠고기 집회에 참여하지 마라는 중고등학교의 공문이나 정부의 문자 메시지 전송과
같은 소식을 들을 땐 말이죠.
이럴 때면 정은임 아나운서가 더욱 생각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검색해보니 여기가 링크되어 있네요.
글의 내용을 보니 어쩜 저랑 똑같은 생각인지 참... 동지(?)를 만나 반갑습니다.
이야 박상현님 너무 반갑네요.저도 정영음을 너무 좋아했었죠.요즘같이 혼란스러울때 문득 생각나면서 코끝이 시큰 해지더군요. 정말 살아 계셨으면 이 시기에 어떤말을 했을까 하고 말이죠. 뭐라도 말을 했으면 참 위로가 많이 되었을텐데요.아직도 80년대 이야기가 90년대에 나타난다며 안타까워 했었는데..80년대 이야기가 2008년도에 다시 나타난걸 알았다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애석하게도,
이런 좋은 방송이 있었을 때는 꼬꼬마라서 알지도 못했네요.
지금은 이런 방송이 있을까요.
우리의 모든 미디어는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도, 정권의 주구노릇에 여념이 없을까요.
제가 살아갈 앞으로의 삶에 꼭 이런 방송이 하나 있어
저도 갯츠비님처럼 반추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아참,
Traveling boy. 정말 좋습니다. ^^
그래서 정은임 아나운서를 보고 이시대의 마지막 아나운서라는 말을 하죠.스스로 노동귀족이었던것을 미안해 하셨던 분이죠.영화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었죠. blueclover님 블러그 제목이죠? ^^ travelling boy 제가 처음에 방문했을때 딱 이노래를 생각했었네요. 그래서 블로그 오른쪽 보시면 제가 예전부터 링크해놓고 방문하고 있답니다.^^
목소리 들으니 알겠네요 ^^
네 핑키님.요즘 참 생각이 많이 나는 분이에요..87년 민주화 항쟁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모두 몸을 숙이고 있을때 떴떳하게 진실을 말씀하던 분이죠. 그것때문에 차별도 많이 받은걸로 알고 있어요..그래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죠.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셨던 분이죠.그래서 너무 그립습니다.
멘트도 그렇고.. 기억납니다. 이분.
jyudo123님도 기억하시는군요. 요즘 같은 세상에 참 그리운 사람과 목소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