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한 노인의 유서를 보며.

by G_Gatsby 2008. 12. 5.


언젠가 한 봉사모임에서 주선한 엠티를 간적이 있었다.
한가로운 자연의 모습을 하루종일 보게 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모임의 주선자는 촛불을 들고 모두 자리에 앉게 했다.

그는 한장의 종이와 펜을 나눠주면서 각자의 초에 불을 켜고 유서를 쓰라고 했다. 써야 하는 유서는 이제 곧 죽음을 맞이 하게 된 기분으로 쓰라고 했다. 삶을 마감하여 무엇을 남겨야 할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모두 촛불을 켜고 난뒤에 한동안 침묵에 빠져들었다.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을 적어야 할것인지 감을 잡을수 없었다.  촛불이 밝히는 빛과 침묵이 전해주는 무게감이 어색해서 그 자리가 무척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끝내 나는 아무것도 적질 못했다.

오늘.
예순을 넘긴 한 노인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할것을 유서로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감을 잃은 한노인이 자필로 쓴 유서를 보면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노인은 죽음의 저편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 했고, 자신이 살아온 흔적의 마지막에 자신의 몸을 기증하려 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련기사보기]




삶을 마감하는 순간.
노인이 느꼈던 절박함과 외로움을 나는 보았다.
스스로의 길을 돌아보는 시간의 고독함을 보았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을 세상과 어울리며, 이곳에 그가 남겨줄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고민하는 노인의 눈물을 보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의 순탄치 않은 세월의 무게를 보았다. 장기기증을 다짐하면서 자신보다 낮은곳에 시선을 두었던 그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다. 마지막 숨을 쉴때까지 느꼈을 그의 진한 외로움을 보았다.  그리고 몇해전, 유서에 아무것도 적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만족감을 가지고 눈을 감는 것이라고 말이다. 스스로의 길을 돌아보며 가슴한켠엔 기쁨을, 또 다른 한켠엔 슬픔을 간직하고 고단했던 삶을 마감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이다.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는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이다.

오늘도 세상의 시선은 높은 곳을 향한다.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의 낮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시선을 어디에 두던, 천국으로 가는 길은 하나의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애써 잊으려 한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노인의 죽음을 보면서, 노인이 느꼈을 외로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살아 숨쉬고 있음을 감사하며,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사는 이야기 > 12시 5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하네스버그로 가는길.  (2) 2008.12.16
만년설을 기억하다.  (6) 2008.12.03
내일은 없다.  (4) 200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