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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흔들리는 시선 - 사랑한다 친구야

by G_Gatsby 2009. 2. 8.

   열심히 산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모두 다 되는것은 아닌것 같다.
흔들리는 세상에 하나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더라도 때로는 세상의 시선에 어우러져 자신의 시선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오늘 문득 걸려온 목소리는 담담하게 자신의 파산 소식을 전했다.


돌팔이 의사 이야기.

   기억을 더듬어도 언제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또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땀흘리며 어울리던 또래들과는 달리 녀석은 늘 외토리 였다. 두꺼운 뿔테안경과 투박한 얼굴은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비싼옷과 깔끔을 떠는 녀석의 행동을 보면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우리와는 달리 부잣집 외동아들 같은 분위기는 아직 순수했던 우리들에게도 뭔가 모를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결코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나중에 녀석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나이 터울이 많은 형님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한번 어울린 우정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비록 유난히 깔끔을 떨고 이기적인 성격의 녀석이었지만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이 있었던것 같다.  이뻐할순 없지만 미워할수 없어서, 늘 손해를 보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멀리 할수 없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 해서 치대를 가게 되었고, 가난하고 모잘랐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녀석이 졸업을 하고, 한 치과에 취업을 했을때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자신이 한턱 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서는, 자정이 넘어서 슬그머니 술에 쩔은 우리들을 버려두고 도망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녀석을 조직적으로 따돌림 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한명씩 포섭하면서 끈끈하게 달라붙는 녀석에게 곧 지고 말았다. 녀석은 돈을 빌릴때에는 수완이 좋았고, 돈을 빌려줄때는 늘 바빴다. 늘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알수 없는 이유로 녀석은 결코 멀어지지 않았다. 

   녀석은  투박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아내를 얻었다. 연애하던 시절 우리앞에 소개했을때, 우리는 장난인줄만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이제 얻었노라고 기뻐하며 녀석은 술에 취했다. 물론 자정이 넘어 모두가 취해갈 무렵에 녀석은 자리를 털고 조용히 사라졌다. 남은 우리들은 지갑을 다시 털어야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녀석은 모든것이 잘풀렸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자신의 병원을 갖게 되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끼고, 장비를 리스하고, 크지 않은 병원이었지만 녀석의 소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그때 녀석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녀석이 지갑을 열어 술값을 내는것을 처음 보았으며, 술에 취해 집에 가는 우리들에게 택시비 까지 쥐어주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녀석은 자신의 이름을 단 간판을 보며 무척 기뻐했다.

   아마도 녀석을 미워할수 없었던 것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앞을 바라보며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살아가는 녀석의 어깨에 묻어 있는 일상의 피곤함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은근히 친구들을 챙기며 걱정해주는 녀석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녀석의 행복한 미소를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흔들리는 시선. 가야할 곳에 머물다.



   가끔식 통화를 하는 녀석은 작년 여름부터 무척 어렵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힘들다는 말도 가끔했었다.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도 문제고 엔고 때문에 리스로 빌린 장비의 이자비용도 크게 늘어나는것 같았다. 그래도 녀석의 목소리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했다.

   녀석에게 아이가 생겼다. 자신을 닮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녀석은 멋적게 웃었다. 우리가 보기엔 많이 닮아 보였지만, 차마 그 말만은 하지 못했다. 아이의 백일이 되어도 우린 초대받지 못했다. 가족끼리 조용하고 하고 싶다는 녀석의 바램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달이 흘렀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파산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가게를 정리하고 부채를 정산하고 집을 정리하고 다시 취직을 해야 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지만 늘 잘 견뎌왔고, 이제는 자신의 가족이 생겼으니 더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쓴소주도 필요없고 의미없는 푸념도 필요없다고 말했다. 병원을 정리하는 순간부터의 시간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녀석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고, 녀석의 세상사는 법도 변함이 없음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흔들림에 지쳐 버린다. 요즘처럼 우울한 이야기가 가득 할때면 더욱 그러하다. 어두운 경제소식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세상속에서도 바라봐야할 곳이 있다는 것은 희망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돌팔이 친구 녀석에게는 새롭게 생긴 가족이 희망이 되었다. 녀석이 베풀고 느껴야할 아내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문득 창을 열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바라본다. 세상은 우리들이 내는 서로 다른 색깔들로 채워져 있다. 가야할 곳이 있는 자동차들은 오늘도 쉴새 없이 달려가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조화로움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야할 희망사랑만은 흔들리지 말아야겠다. 밤이 깊어지고, 나는 녀석에게 오랜만에 문자를 보낸다.

"사랑한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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