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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by G_Gatsby 2009. 12. 28.

비오는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나니 매섭게 눈이 내렸습니다.
경비실 할아버지가 아침부터 눈을 치우기 시작했지만 내리는 눈은 금새 얼어 붙습니다. 
도와드릴까 생각을 하다가 이사올때 무척 거만하게 사람을 쳐다보며 매정한 말을 내밀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이 나서 그만두었습니다. 눈이 그치지 않고 얼어 붙자 할아버지는 으로 눈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삽질은 해가 저물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시절이 수상하니, 할아버지도 삽질을 해야 하나 봅니다.

#1

보이는 풍경은 모두 눈꽃이 피었습니다.
하얗던 길바닥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난뒤에는 시커멓게 변해버렸습니다. 눈을 던지며 놀던 아이들도 더이상 눈을 뭉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이 지나간 길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것 같습니다.

눈을 맞으며 오랜만에 재래시장을 찾아갔습니다.
춥고 배고픈 세상이지만, 이곳만큼은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질것 같았습니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비좁은 시장골목을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비릿한 생선냄새도 풍겨오고, 장작 태우는 냄새도 느껴집니다. 추운 사람들의 공허한 입김도 느껴집니다.

'연중세일 중' 이라고 붙은 그릇가게에 잠시 들립니다.
그곳에서 위생도마를 하나 골랐습니다. 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비쌉니다. 살짝 옆을 보니 적어 놓은 가격보다 몇천원이 더 비쌉니다. 아저씨에게 좀 비싸다고 했더니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할수 없이 옆에 놓인 가격표를 보여드립니다. 아저씨는 그제서야 가격표에 적힌 대로 금액을 받습니다.

아마도 사람을 보고 물건을 파시나 봅니다.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돈을 더 받으시는 모양입니다. 연중 세일을 한다는 아저씨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어리숙해 보이는 제가 잘못입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가게에서 나와 길을 걷습니다.
갑자기 등뒤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돌아보니 '연중세일'로 그릇을 팔던 그 가게 입니다. 안에서 무언가 떨어진 모양입니다. 아마도 조금전에 높은곳에서 도마를 꺼내다가 그릇더미를 건드린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나오고 나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잠시 아저씨와 제 눈이 마주칩니다. 어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살짝 미소만 지어드렸습니다.



#2

어둑해진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경비실 할아버지는 아직도 삽으로 눈을 깨고 있습니다. 눈이 얼어 붙으면 차를 주차하기 참 어려워 보입니다. 할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땅은 아직도 얼어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삽질을 멍하니 쳐다봅니다.
도와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다시 고민을 해 봅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고 잠시 저를 쳐다봅니다. 얼굴에는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이 놈의 거지같은 눈, 에이 XXX' 할아버지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어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또 한번 살짝 미소만 지어 드렸습니다.


PS. 올해의 마지막 '12시5분전' 이야기가 될것 같습니다.
올 한해는 더 많은 이웃블로거들을 만나게 되어서 참 기쁜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따로 포스팅을 해야 하지만 워낙 게으른 블로거라서 이글 말미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식스팩 복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면서 2년연속 우수블로거가 되신 위대한 비프리박님, 백마디의 말보다 한장의 사진으로 느끼게 해주시는 Slimer님, 늘 영화비를 아끼게 만들어 주시는 엔돌핀 같은 Reignman님, 글을 읽으면서 매번 미소짓게 만들어 주시는 지구벌레님, 두보의 시가 무척 잘 어울리는 가림토님, 언제나 소박하고 포근한 헌책방IC님, 방문할때 마다 하나씩 배우게 되는 권대리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집필하시고 아이폰을 갖고 있지 않으신 빈상자님, 언젠가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깊은숲님. 이 외 모든 이웃 블로거 분과 찾아주시는 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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