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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없는 양심 팔아 먹기

by G_Gatsby 2009. 12. 9.


요즘 금연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많으면 두 갑씩 피우다가 얼마전 부터 피우질 않고 있습니다. 금단 증상 같은게 눈에 띄게 보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온다거나,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슬리퍼를 냉장고에 넣는 일이 생겼습니다.
금단증상인지 치매인지 확인할순 없지만 금단증상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니 일산화 탄소와 니코틴 중독이 참 무섭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오히려 마약에 중독이 된것처럼 멍하고 붕 뜬 느낌이 납니다.

건강 때문에 금연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어느 순간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귀찮아 지고, 담배 연기가 싫어지더군요. 그래서 그 순간 결심을 하고 그 뒤로는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네요. 뜯지도 않은 담배가 저를 유혹하고 있지만 손이 가진 않습니다.

슬리퍼를 전자렌지 안에 넣고 돌리거나, 간장을 콜라로 착각하고 마시는 현상을 보이지 않는 한 담배는 피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이러한 금단 증상이 사라지겠죠.

없는 양심 팔아 먹기

어릴적에 무언가 큰 다짐이나 약속을 할때면 으레 ‘양심을 걸고’ 라는 말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는 양심을 건다는 것이 자신의 명예를 거는 거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양심을 걸고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의 진심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고 그 말을 뱉은 사람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린 적도 있었죠. 무척 오래된 일이긴 합니다만.

요즘에는 이 말의 의미가 변해 가는 것 같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양심을 걸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양심을 건다는 것은 차후의 변명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이 양심을 팔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실은 공허해 지고 거짓말은 승리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 존재 하지 않았던 양심을 걸었던 소심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이 27만원 밖에 되지 않는 전두환씨는 자신의 양심을 걸고 청문회에서 증언을 했습니다. 노태우씨는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하면서 끝까지 자신을 믿어 달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군복입은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은 악착같이 지켜내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 해충박멸"

양심없는 사람들은 갈수록 있지도 않은 양심을 업그레이드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해의 정부' 출범이후에는 없는 양심이 최대의 호황을 누리며 팔리고 있습니다. 한때 안해본게 없다는 누군가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그런말을 했다고 양심선언을 합니다. 세종시에 대해서도 4대강에 대해서도 자신을 믿은 사람들의 오해일뿐이라는 겁니다.

양심을 걸고 KBS의 공영성을 지키겠다는 모모 사장은 MB특보 출신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 까지 정권의 나팔을 지켜냈습니다. 참여정부의 비리를 점잖게 꾸짓던 청와대의 모 비서관은 자신의 부동산 위장전입 사실이 들통나자 한번만 봐주면 양심을 걸고 열심히 하겠다며 비열한 양심을 또 한번 팔아 먹습니다. 이 외에도 양심을 걸고 거짓말을 한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심을 팔았던 사람 누구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없는 양심을 파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기만하는 사기일 뿐이죠.

오해의 정부를 이끌어 가는 수장이, 없는 양심을 파는데 탁월한 분이기 때문에, 그를 뒤따르는 오해의 견들도 당연하듯이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명예, 사회적 진실, 공동체의 행복 보다는 자신의 부, 사회적 이득이 더 중요시되는 사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우리 사회의 양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슬리퍼를 냉장고에 넣었다가, 그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후 멍하니 창 밖을 쳐다 봅니다. 그동안 몸에 지니고 있던 니코틴의 중독이 이렇게 사람의 의식을 망가트릴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정신이 아찔해져 옵니다.

금연을 한 이후에, 우리가 숨쉬는 공기에 특별한 냄새가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담배의 독한 연기를 맡으면서는 결코 느낄수 없던 냄새입니다. 담배가 사라지고 난 뒤의 상큼함을 느낍니다. 사실 이것이 정상인데 오히려 새로운 기분을 느낍니다.

오해의 정부가 사라진 이후의 느낌이 바로 이러한 느낌이겠지요.
민주주의 라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단어 임에도 중독 때문에 느끼지 못해서 새롭게 느껴지는 느낌 말이죠. 오해의 정부가 만들어 내는 지독한 연기가 사라지고 양심의 시대가 다시 오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 때쯤 저도 금연에 성공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