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주인공의 열연도 돋보인 영화였지만 무엇보다도 국가의 비극을 들어내놓고 만들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꼭꼭 숨겨져 있던 아픔을 내놓고 이야기 할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이다.
영화 '꽃비'도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해방 이후 복잡한 정세 속에서 극우단체와 미군정에 의해서 2만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아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도 일부 극우단체에서는 남로당을 들먹이며 이념으로 제단하고 있다. 이 아픈 역사를 바로잡은 것은 불과 몇해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서였다.
'화려한 휴가'가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그 의미를 전달했다면, 영화 '꽃비'는 감독과 작가에 의해서 설정된 특정한 공간에서 4.3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래서 4.3 사건에 대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영화에 대한 평점이 아주 박할수 밖에 없는 영화다. 차라리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을 넘다드는 아픔
영화는 제주도 어느 마을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된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나오는 인물도 한정되어 있다. 학생수도 별로 없어서 인물들의 이름을 외울 정도다. 외딴곳에 떨어져 있어서 음산한 느낌마저 든다. 아마도 4.3 사건 당시의 제주도의 모습을 이렇게 비유했지 싶다.
영화에는 두명의 남학생과 한명의 여학생이 등장 한다.
그들은 4.3 사건에서 살아남아 성장한 아이들로 보인다. 그들은 모두 아픔의 상처를 갖고 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흑백 동영상들이 지나간 아픔을 상징한다면, 여학생의 어머니가 갖고 있는 실어증과 불면증은 현재의 아픔을 상징한다. 그들은 이러한 아픔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과거에 상처받았던 주민들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진행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마을에서 집단으로 제사를 지내는 모습에서, 어두운 학교의 배경에서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가 주된 내용이다. 학교의 '짱'이라고 일컫는 '선도'가 갑작스럽게 자퇴를 하면서 생긴 문제다. 세력이 비슷한 두 남학생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인물들이 상징하는 것들
두명의 남학생과 또 한명의 여학생 사이에 또 다른 학생이 전학을 오게 된다. 육지에서 왔다는 정체불명의 남학생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복잡해 지기 시작한다. 학교의 '짱'을 먹기 위한 본격적인 쟁탈전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여학생을 좋아하는 두 남학생 사이에도 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자퇴한 학교의 "짱'은 일본을 뜻하지 싶다.
청순하고 예쁜 여학생은 당시 제주도의 평화로운 모습을 뜻하지 싶다. 흰옷을 즐겨입고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학생의 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그녀는 두 남학생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늘 평화롭게 지내던 과거를 회상한다.
두 남학생은 당시 이념전쟁에 시달리던 시대의 모습을 뜻하지 싶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남한과 북한, 우익단체와 공산당. 이러한 대립적인 개념으로 두 남학생이 그려진다. 어떠한 인물이 더 좋은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두 남학생중 이기는 사람이 학교의 "짱'이 되고 여학생을 차지할수 있다.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우리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육지에서 전학을 온 학생은 미군정을 의미하지 싶다. 그들은 섬에 고립된 아이들에게 육지의 새로운 것들을 보여준다. 그가 갖고 다니는 야구공은 미국을 상징하는 스포츠다. 그는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도색잡지를 돌리고 말보르 담배와 초콜릿을 선물한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잘듣는 남학생을 선택해서 또 다른 남학생의 세력을 몰아낸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학교의 "짱'이 된다.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다.
한 세력을 몰아낸 남학생은 순수하고 평화로운 여학생을 유인해 성폭행을 범한다.
알수 없는 약을 먹이고 알수없는 힘에 이끌려 강간을 하고 만다. 그에게 이러한 방법을 알려준 학생은 육지에서 온 학생이다. 그는 기절한 여학생의 몸을 또다시 유린한다. 그리고 여학생의 얼굴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냉전시대와 이념전쟁을 겪은 우리 역사는 참으로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상대방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분단의 아픔을 겪은 독일은 이미 통일을 이루었고 중국과 타이완은 급속도로 가까워 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념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고, 무수한 경제적 이익 조차 중국에 빼앗기고 있다.
4.3 사건을 다룬 영화 '꽃비'를 보면서 단지 제주도민의 아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히 유린당하고 상처를 받은 여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민족적 아픔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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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평가가 좋지는 않다.
지나친 비유가 오히려 주제에 대한 접근을 잃어버리게 만든게 아닌가 싶다. 관객이 직설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영화가 호평을 받긴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뒤에는 무언가 알수 없는 실망감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4.3 사건을 그린 전체적인 영상과 연출은 마음에 든다. 주인공의 마음을 설명하는 듯한 색채감과 주인공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영화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한지붕 세가족'에서 '만수'로 나온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어 연기하는 모습도 볼수 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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