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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다시 일어서는 김병현을 기다리며

by G_Gatsby 2008. 4. 20.

"김병현에 대한 기억."

야구선수로는 작은 체구 인데다, 흔치 않게 공을 밑으로 던지는 언더핸드 투수. 그는 1999년 메이저리그 신생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에 입단해서  덩치큰 메이저 리그 강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으며 화려하게 데뷔를 했다. 마구같은 그의 공에 연신 헛스윙을 휘둘러대는 거구들의 모습을 볼때면 마치 만화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며 얼마나 즐거워 했는지 모른다.

당시 애리조나의 간판 투수였던 2미터의 거구 랜디존슨이 경기에 나선적이 있다.  97마일짜리 강속구를 던져대던 이 왼손잡이 투수가 마무리 투수인 김병현에게 공을 넘길때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팽팽하던 경기였는데, 카메라가 비춰주는 두 선수의 체격차이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을 받은 김병현은, 자신감 넘치는 투구로 타자들을 몰아 세웠고, 마지막 공을 아웃으로 처리하면서 오른손을 불끈 쥐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작지만 당당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도 기죽지 않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었다.

" 자신감의 정점에서 좌절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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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의 이 작은 거인은 해를 거듭하면서 팀의 주축선수가 되었고 2001년 월드시리즈 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
팀이 3:1로 앞선 상황에서 나온 김병현은 8회 쉐인 스펜서, 스캇 브로셔, 알폰소 소리아노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팬들을 흥분 시켰다.
이어지는 9회말 투아웃 주자는 1루에서 타자는 노장 티노 마르티네스.
힘있게 던진 그의 공이 펜스를 넘어가고 믿기지 않게 동점이 되어 버렸다.


이어지는 10회말에서 다시 데릭지커에서 홈런을 맞음으로써 애리조나는 어이없이 패하게되었고 팬들의 충격과 함께 그를 비난했다.

이어지는 5차전 2:0으로 이기고 있던 9회말 다시 김병현이 등판했다. 투아웃 주자 1,2루 상황. 그러나 믿기지 않는 일이 또 일어났다. 다음타자 스캇 브로셔에게 또 홈런을 맞은 것이다. 팀은 2:3으로 패배했고 김병현은 마운드에 주저 앉고 말았다. 수많은 양키스 팬들이 열광을 하고 있는 순간, 마운드에 주저 앉은 김병현의 모습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어 보였는지. 나는 채널을 돌려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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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애리조나는 양키스를 꺽고 그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지만, 혹시나 양키스에게 패배 했다면 김병현은 영원히 애리조나의 비극적인 역사에 이름을 올릴뻔했다.

" 늘 자신만만 했던 김병현, 서서히 사라지다"

하지만 그 이후, 부상과 부진을 겪으면서 이후 보스톤 레드삭스, 콜라라도 로키스, 플로리다 마린스등 팀을 옮겨 다니게 된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집했던 선발투수가 되었지만 현저하게 떨어진 그의 스피드와 제구력은 예전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하였고 이리 저리 떠도는 그저 그런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잘생긴 외모와 자기관리가 뛰어난 박찬호 와는 달리, 작은 체구에 연습시간에 지각하는 이유 때문에 언론에도 비판도 자주 받았던 그였지만, 만화와 게임을 좋아하고 때론 익살스럽기도 한 그의 특이함에 많은 팬들은 즐거워 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강타자를 만나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있게 공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 우리는 시원함을 느꼈고 박수를 보냈다.

2008년. 그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박찬호는 FA로 거액의 돈을 받고 텍사스로 이적했지만, 김병현은 거듭되는 부진으로 인해 데려가겠다는 팀이 아무도 없는 무적선수가 된것이다. 올해 스프링 캠프때 피츠버그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예전만 못한 그의 구질에 실망한 구단은 그를 방출해 버렸고 30개가 넘는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는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9년동안 54승 60패 86세이브 방어율 4.42. 841이닝동안 삼진 806개.
메이저리그 투수의 평균 성적 치고는 훌륭한 편인데 그를 찾는 구단은 없다. 아마도 지난 몇년간의 부진과 그의 불성실한 훈련모습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이후, 그의 뒷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어디서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어느 구단과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잘 들려 오질 않는다. 누군가는 은퇴를 거론하기도 한다.

" 다시 일어서는 김병현을 기다리며"

하지만, 그는 이제 30살이다. 남들은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맞을 나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기에는 그가 보여준 자신감이 너무나 아쉽다.

멀리 이국땅에서 20대 청춘을 보낸 그가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인터뷰 할때 특유의 숫기 없는 행동과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던 그는, 메이저 리그에 도전했던 많은 한국 선수중에 박찬호와 더불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이기도 했다.
 
동양인, 왜소한 체구, 언더핸드 투수. 승자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스포츠의 경기에서 그는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직 실력만으로 자리에서 살아남았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련을 겪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마운드에 돌아와 힘차게 공을 던지는 모습을 우리는 기대한다.

김병현,  그의 자신감 넘치는 행동은 그를 지켜보는 우리로 하여금 도전과 희망을 가지게 했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불리한 것은 환경일뿐 헤치고 나아가면 얻을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말해주었다.
   
이것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사회적 편견과, 갈등속에서도 도전하고 성취해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메이저 리그가 시작된지 한달이 다 되어 간다. 다시 돌아와 타자를 매섭게 노려보며 삼진을 잡아내는  김병현을 우리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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