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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8살 조카, 나에게 꿈을 일깨워 주다

by G_Gatsby 2008. 4. 22.

조카 녀석의 8살 생일.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 하면서 제법 의젓해 졌다. 학원비 걱정에 한숨쉬는 형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갖고 싶어 하던 게임기를 생일 선물로 달라며 졸라댄다. 비싼 게임기는 절대 안된다는 형님의 전화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엇을 사줄까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형님 댁으로 가는길에 조카 녀석이 태어나던 그때를 생각하며 행복함에 젖는다. 녀석은 집안의 장손으로써 자식농사를 게을리 했던 형님이 불철주야 고생하면서 탄생시킨 집안의 복덩이 였다.  두형제를 가진 우리 집안에서 탄생한 유일한 핏줄이기도 하다. 가족 모두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나도 녀석이 태어날때 출산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낄 정도 였다.그래서 인지, 녀석이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은 따뜻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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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 녀석의 꿈은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고 프로게이머가 되는등의 현실적인 꿈들을 선택하는데, 녀석의 꿈은 좀 의외였다. 집에서 너무 오냐오냐 하며 키웠나 싶어 왜 장군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녀석은 TV에 나왔던 드라마에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고 반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얼마전까지 놀러가면 삼촌의 등에 장난감 칼을 들이밀며 왜놈은 물러 가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었다. 짧은 머리 스타일 때문이라고 생각한 나는 머리를 조금 기르고 나서야 칼을 맞지 않게 되었다.
 
늘 반갑고 정겹운게 가족이라는 울타리 인것 같다. 가끔 보는데도 불구하고 입가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반기는 조카 녀석. 나는 생일 선물과 함께 거금 2만원을 지갑에서 꺼내 주는 대범함을 보여준다. 식사 후 이어지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 녀석은 학원에서 배운 영어 실력을 뽐내며 나에게 질문한다. 마침 걸려온 휴대폰 덕분에 위험스러운 장면을 모면한다.

이젠 이목구비가 제법 뚜렷해진 녀석은 컴퓨터 앞에 앉아 선물로 받은 CD를 넣고 돌린다. 심심해진 나는  무심코 한마디 던진다.

"너는 커서 뭐가 될꺼니? 그러니까 꿈이 뭐야 "
"우주 비행사~!!! "   "삼촌은 커서 뭐가 될꺼야?"


이녀석은 삼촌이 아직 자랄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아직 어른으로 안보이는게 분명하다.  

"삼촌 꿈? 장래 희망 같은거?"
"응. 삼촌 꿈이 뭐야?"
"그냥..뭐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사는거지"
"에이..시시해!!"
".................."


녀석의 질문은 단순한데, 난 딱히 할 말이 없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텐데, 대답하는 나는 막막하다. 아직 살아가야할 날들이 많은데 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이렇게 추상적인 것이라니. 슬쩍 서글픔이 밀려온다. 녀석은 우주인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나에게 설명해 준다.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어느 행성을 오간다는 녀석의 대단한 상상력에 살짝 미소가 머금어 진다.

돌아오는길에 곰곰히 한번 생각해 본다. 이럴때와 같이 거창한 꿈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면서 좀 더 현실적인 희망이 나에게도 있었는가를 말이다. 회사에서 월급이 오르고, 주식이 대박나고, 이름난 음식점에서 맛있는것을 먹고 이산저산 돌아다니며 여행도 즐기는 여유로움을 생각해 본다. 새해에 계획했던 나의 다짐들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가졌던 작은 희망들이 모두 이루어졌을때의 행복감을 상상해 본다.

사회를 경험하면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과 현실의 무게감을 느꼈을때, 비로소 우리가 꿈꾸던 희망은 좀 더 구체화 되면서 자리를 잡아 간다. 이것은 순수함을 벗어나 현실에서 눈을 뜰때 보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창하진 않더라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느낄수 있는 행복감과 희망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을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달콤하다.

집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계획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할 것들을 다시 한번 추스린다. 아직 30대, 삶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가야할 길이 남았기에 내일의 꿈과 희망을 마음속에 다시한번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