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들3 초식하는 영혼 넉달째 급여를 받지 못해 쩔쩔매던 늙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가 안좋다고 미루기를 한달. 사장이 해외출장 나갔다고 미루기를 두달. 경리부장이 그만두고 나가서 정산이 안되었다고 미루기를 세달. 급여 안준다고 큰소리 쳐서 기분나쁘다고 미루기를 네달. 사장이 퇴근하는 에쿠스 승용차를 온몸으로 세우고, 말리는 과장과 10여분 몸싸움을 하고, 평생 처음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난 다음날. 해고 라는 말과 함께 누런 봉투가 땅에 던져졌다. 기름묻은 손으로 봉투를 가슴에 품고 나오던 날. 4년간 늙은 몸을 의지했던 낡은 공장 대문을 영원히 떠나던 날. 그는 더이상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다. "우리는 초식하는 영혼으로 태어났다." 우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도 식성이 있다고 한다. 스스.. 2010. 5. 6. 아버지와 휠체어 검은색 점퍼에 검은색 바지. 검은색 구두에 검은색 가방을 맨 남자가 길을 걷는다. 온통 검은색으로 몸을 감싼 남자의 머리가 백발이다. 그래서 유독 눈에 띈다. 남자는 노점에서 딸기를 한봉지 산다. 이것 저것 물어보고는 제일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고른다. 빨간 딸기 더미에서 남자의 머리카락은 더 하얗게 보인다. 결국 남자의 검은색 몸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매달린다. 뚜벅 뚜벅 걷는 남자의 뒤로 네온사인의 불빛을 받은 그림자 마저 까맣다. 모퉁이를 돌아서 초등학교 운동장앞 인도로 접어 든다. 흐릿한 가로등이 켜지면서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먼발치 뒤에서 걷고 있지만 남자의 발걸음이 가볍다는 것을 느낀다. 가볍게 흔들리는 검은봉지. 입가에 번지는 미소만큼 새하얀 머리도 이리.. 2010. 4. 22. 흑백의 거리. 새로운 건물이 우뚝 솟아 있는 도심의 사거리. 사거리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오래된 건물들이 쓰러질듯한 모습으로 일렬로 서있다. 개발자의 이기심 때문인지, 남아 있는 자들의 욕심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보여지는 풍경은 기묘하다. 몇 가구 안되는줄 알았는데 길을 걷다 보니 꽤 길게 늘어서 있다. 주위에는 대형 광고판을 부착한 건물들과 아파트가 즐비한데 이러한 곳이 여기 숨어 있다니 신기 하다. 색이 바래고 오래된 거리를 바라보니 마치 흑백영화를 보는듯 하다. 미닫이 문이 있고, 연탄 화덕도 보인다. 고물상도 있고 경사가 심한 골목길도 보인다. 낮은 창문 아래엔 아이들이 저질러 놓은 낙서가 있고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위에는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낮잠을 잔다. 도심에서 들려오는 소음마저 이곳을 비켜 나가듯.. 2010. 4. 1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