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부의 시작과 교육정책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했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적어도 그가 가지고 있던 셀러리맨의 신화와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희망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인수위원회의 영어 몰입교육 정책을 시작으로 중학교 일제고사 실시를 비롯한 사회 전체 경쟁을 강조하는 정책의 방향을 보았을 때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공교육을 마친지 십수년이 지나서 이제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자랐던 친구들과 나의 모습을 볼때는 적어도 이 교육문제 만큼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느껴왔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학력고사가 있던 시절,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몰입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부모세대의 열망과 경제성장을 요구하던 사회의 엄격한 분위기는 우리를 반공이념과 주입식 교육으로 무장시켰다.
아침7시 부터 시작된 자율학습과 정규 교과과정이 끝나면, 야간 자율학습을 밤 10시까지 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했다. 교육열풍지대인 서울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살았는데도 그정도 였으니 그 당시에도 교육에 대한 열정은 사회를 휩쓸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받는 교육의 목적은 단지 대학교에 가기 위한 것이었다.
적어도 성장기에서 교육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사회에서 사는 의미와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기본 인성교육과 함께 자신이 무엇을 잘 할수 있는지를 알아서 좀 더 높은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올바른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대가 흘러,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제도가 바뀌고 학교에서 학원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우리의 교육은 바뀐것이 없지 싶다. 바뀐것은 민간교육이 활성화 되면서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어릴때 부터 경쟁이라는 생존 투쟁을 계속 하고 있다.
우리가 벌이는 경쟁은 상대적인 경쟁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좀 더 잘해야 하고 이것은 끝없는 전쟁의 시작점이 된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사회에 개인의 다양성 보다는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낳았고 경쟁자들을 위한 학연과 지연의 연결고리를 더욱 두텁게 만들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대화와 존중의 사회이념보다는 대립과 갈등의 풍조를 만들면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정치는, 국민의 행복을 위한다는 절대적인 가치를 버리고, 권력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상대적인 가치를 쫓아 끝없는 당파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기업은 더 가지기 위한 욕망을 위해 법과 윤리를 던져 버리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외치며 경쟁을 강요하는 위정자들은, 정작 자신들은 넓은 세상에 나가서 절대적인 가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내부의 상대적인 가치만을 손쉽게 가져간다. 그리고 권력의 달콤함은 또다른 예비 위정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돌이켜 본다면 이 시대와 사회속에서 살아왔던 것이 별로 행복하지는 않은것 같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밀려왔던 취업의 고민들은, 토익과 자격증을 위하여 달려가야 했고, 졸업의 기쁨보다는 남들보다 좀 뒤떨어지는 성적에 고민하며 취업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은 고사하고 이곳 저곳을 기웃 거려야 한다. 비정규직인 직장 덕분에 남들에게 떴떳하지 못했고 벌어 놓은 돈이 없어서 결혼은 계속 미루어야 한다. 이것이 무한 경쟁에서 상위권에 들어가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시작한 결혼 생활과 함께 자녀문제는 곧 경제적인 문제로 이어졌고, 내 집마련, 아이들 공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꿈은 손쉽게 포기해 버려야 하는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내 집을 사기 위한 노력은 끝이 없고, 자녀들의 교육비는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 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남들만큼 시키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불안감은 경쟁에서 상위권에 올라가지 못한 80%이상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아픔 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상대적인 경쟁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주위 사람들과의 따뜻한 공동체 의식도, 이 사회를 개선하고 가꾸고자 하는 열의를 가지지 못했고 나이가 먹어가는 만큼 혹사된 머리와 몸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사교육비만 빼 버리면 우리의 가계가 얼마나 가벼워지겠는가. 그 비용만큼 대출이 줄어들고 자기계발에 투자가 되고 문화와 사회에 투자가 되는 것이다.
교육은 100년지대사 라고 했다.
올바른 교육은 사회의 정체성을 가져다 주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
초등교육은 인성교육과 언어의 올바른 사용, 사회의 개념과 문화에 대해서 가르치고, 중등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상식과 언어 역사 수리 능력에 집중하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굴하는 교육이 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지금처럼 모든것을 잘해야 하는 아이들의 경쟁은 개선되고 사교육비용도 낮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고등교육은 자신이 잘 할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공부를 한다면 이 사회가 좀더 전문화된 스페셜리스트 들이 많이 탄생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토익900점의 실업자가 양산되고,중소기업 총무과 직원의 토익점수가 900점이라면 사회도 큰 손해가 아닐까.
지금 교육은 우리 아이들을 나와 똑같이 힘들게 하는 것이다
2008년이 밝아 왔고 정권이 바뀌면서 또 새로운 교육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예전보다 좀 더 강화된 몰입교육과 경쟁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충분히 아이들은 힘들지 않은가. 그리고 그 무한한 경쟁이 사회전반에 큰 희망보다는 좌절을 안겨주고 있지 않은가. 사교육비를 위해서 자신의 중년을 희생하는 기러기 아빠가 있고, 1천만원대 등록금 때문에 오늘도 우리 학생들은 시위를 하지 않았던가. 이제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대학교육도 받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왜 우리 사회는 선진국 진입을 희망하고 약속하면서 교육만큼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제 새로운 정권의 시작이다. 그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지만 이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수 있는 교육제도의 개혁을 한번 기대해 본다.
사교육비 증가와 등록금 인상을 막는 방법은 교육의 절대적인 목적을 다시한번 인식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서로서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 하는데 부터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처럼 똑같이 취급하며, 어른들의 시각에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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