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교도소 가는길..

by G_Gatsby 2008. 7. 18.

인도가 없는 도로.
노란색 중앙선이 선명하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아 한적한 시골풍경을 그려내는 곳, 그 언덕위 회색건물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터벅터벅 걸어올라 가는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아마도 이 고요한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는 회색건물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리라. 많은 면회객들이 한숨과 슬픔을 안고 걸었을 이 길.
바로 교도소 가는 길이다.

기억 하나.

   기억은 선후배의 끈끈한 정속에서 우정에 취하던 대학시절로 돌아간다. 당시에는 여럿이 함께 자취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의 경우 고향 선후배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친구와 방이 몇개달린 좀 넓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새로운 신입생이 고향 후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함께 살게 되었다. 덕분에 고단한 설거지 담당은 물려 줄수 있게 되었다.

   과는 달랐지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부쩍 친해졌다. 후배는 나보다 내 친구를 더 좋아하긴 했지만 쾌활하고 말주변이 좋은 후배가 밉진 않았다. 후배는 호기심이 많고 붙임성이 많아서 친구들도 제법 많았다. 집에 늦게 들어갈 때에는 걱정이 되어서 삐삐 까지 쳐주는 정이 많은 후배였다. 그렇게 우리는 2년을 함께 살았다.

기억 둘.

   녀석에게는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호기심이 참 많아서 궁금한 것은 꼭 확인해야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이것이 과해서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리고 사실을 약간 과장하는 버릇도 가지고 있었다.  계란후라이에 구연산을 소금과 같이 넣어서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다고 우기는 바람에 실험을 했다가 속이 뒤집어 진 적도 있었고, 맥주를 먹고 물구나무를 서면 배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따라했다가 구토를 심하게 한 적도 있다. 번번히 속았지만 녀석의 말을 들으면 꽤 그럴 듯 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어이없는 웃음으로 기억되는 자취생활의 기억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서로 흩어졌다. 후배는 학업을 계속 했고 친구와 나는 사회로 뛰어 들었다. 짐을 꾸릴땐 자주 만날 것 같던, 헤어지면 못살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만나는 시간이 점점 줄어 들고, 전화하는 것도 뜸해졌다. 그러다가 언제 부턴가 연락을 하질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 갔다.

잘못된 길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는 반가웠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 가끔 전화안부는 묻곤 하지만 친구의 목소리는 늘 반갑다. 간단한 안부인사를 하고 난후에 친구가 내게 들려준 말은 좀 충격적이었다. 밝고 명랑하던 녀석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으니 면회를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만에 후배와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후배녀석은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여러 가지 일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다. 워낙 말솜씨가 좋고 붙임성이 좋아서인지 졸업하기 전에 이미 취업이 되었다고 한다. 주위에서는 다단계 회사라서 만류가 있엇지만 녀석은 말을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과 호기심이 선택한 잘못된 길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만원짜리 양말을 팔고, 수십만원짜리 전기요를 팔러 다녔다고 한다. 그것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판매를 했던 것 같다. 지방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와 친구에게 그런 적은 없었다. 그런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난 것 같다. 다단계 사업은 이렇게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다.

   그곳에서 녀석이 무엇을 배웠는지는 짐작할 만 하다. 그래서 녀석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벌이고 말았다. 스스로 다단계 회사를 창업 했는데  돈을 내고 몇 달뒤에 몇배의 이익을 내준다는 투자사기회사였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아마도 자신의 언변과 설득 능력을 자신했고, 정작 그 쓰임새가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으로 후배 녀석은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교도소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몇 년 만에 본 후배는 분명 변해 있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빛나던 눈빛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었다. 면회 시간동안 녀석이 한 것은 자신의 사업에 대한 변명과 억울함 이었다. 눈빛은 욕심의 배를 채우지 못한자의 한없는 미련이었다. 그래서인지 면회객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수년전 헤어졌던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후배의 그런면을 모르고 나에게 전화를 한 친구가 미안함에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기대한 것은 원인이 어찌되었건 반성의 모습이었고, 지난시간의 좋은 기억에 대한 회상 이었다. 죄값을 받고 바른 길을 가겠다는 약속 이었다. 그래서 진한 추억을 함께 만든 선후배간의 끈끈한 관심이 이어지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더 추악한 미래를 생각하는 눈빛 이었다. 그것은 배신감을 넘어선 또다른 충격이었다.

   헛된 욕심을 버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함께 웃는다면, 그것이 부자가 되는길이라고 후배에게 말해주었다. 녀석이 귀담아 듣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것이 내가 녀석에게 해줄수 있는 말의 전부다. 그 이후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면회소를 떠날 때 그 흔한 작별인사도 하지 않았다. 헛된 욕심과 거짓으로 뭉쳐진 그 눈빛에 무슨 말을 할 수있으랴.
 
   살다 보면 우리는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낄 땐 당황스럽다. 어느 것이 본 모습일까 라는 의문이 들면 좋았던 기억들은 모두 사라진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변하고 있고 사람에게 느껴지는 향기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익숙한 사람에게 예전에 느꼈던 향기가 없어지고 악취가 풍기면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다. 교도소로 가는 길에 시원했던 바람이, 나오는 길에는 숨이 턱 막힐정도로 더운 바람이 된다.  그 길 위에서 내가 사랑했던 한 사람을 잃었다.


'사는 이야기 > 우리시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골, 열두살 수진이를 보다.  (10) 2008.08.05
짠돌이와 6만원  (16) 2008.07.16
친구, 가리워진길을 보다.  (12) 2008.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