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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본후.

녹차의맛(The Taste Of Tea) - 일상의 맛

by G_Gatsby 2009. 1. 4.


꽃은 피고 짐을 되풀이 하며 그 생명력을 이어간다.
우리는 꽃의 화사한 모습에 취하지만, 정작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화려함 속에는 뜨거운 생명력이 감추어져 있다. 꽃을 피우기 전까지 우리는 그 뜨거운 생명력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늘 화려함과 꿈에 젖어 있지만, 인생의 길에는 화려한 꽃만 보이진 않는다. 화려함과 행복을 찾아 떠나는 인생의 길에는 숨겨진 무언가가 존재한다. 영화『녹차의맛』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의 "행복한 맛" 을 일깨워 준다.

   영화제목에 대해서 꽤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다. 왜 제목이 '녹차의 맛' 일까 궁금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녹차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서야 어렴풋하게 느낄수 있었다. 우리가 쉽게 마실수 있는 녹차는 약간 씁쓸한 첫맛을 가지지만, 뒷맛은 정말 담백하다. 아마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것 역시,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느낄수 있는 일상의 재미와 행복이 바로 이런맛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가족

   삶의 근원은 역시 가족이다. 가족의 삶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이제 막 생명으로 잉태된 아이들이 있고, 삶을 알아가는 청년들이 있으며,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시간을 회상하는 노인들이 있다. 그래서 가족의 모습은 우리 인생의 지도 일수도 있고, 가장 폭넓은 감정과 가르침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의 범위내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여기에도 한 가족이 있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이 아이.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전학을 가자 슬퍼한다. 그는 이제 사랑에 대해서 막 눈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순수한 감정은 슬픔과 기쁨이 수시로 교차된다. 짝사랑의 끝은 그에게 참을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다. 삶의 모든것이 정지된듯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다. 새로운 여학생이 전학을 오게 되고, 그는 또다시 짝사랑에 빠진다. 이제 예전과 같이 고백도 하지 못하는 바보는 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늘 설레임과 흥분이 가득한 새로운 세상이다.


   꼬마 아이가있다. 아이는 요즘 물음표를 달고 살아간다. 어느날 불쑥,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 하나의 영상이 되어 찾아 왔다. 공부를 할때에도, 쉬고 있을 때에도 또다른 자신의 모습이 찾아온다. 아이에게 그것은 낯설고 불편하다. 아이는 분명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인간이 의식에서 이제 막 깨어나기 직전의 모습일 것이다.

  누군가 철봉을 거꾸로 넘게 되면, 그 모습이 사라진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꼬마 아이에게 철봉을 거꾸로 넘는것은 힘에 부친다. 하지만 아이는 철봉을 거꾸로 넘기로 결심한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하고 자신만 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는 이 비밀스러운 현상을 스스로 극복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아이는 성장통을 이겨내고 삶의 주체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여기 이 남자, 조금 쓸쓸해 보인다. 사랑의 아픔을 겪은 그는 좀처럼 삶에 집중하지 못한다. 시간은 무덤덤하게 자신을 지나가고 있지만, 삶의 촛점은 맞추어 지지 않는다. 이젠 이겨내었다고 다짐해 보지만, 가슴속의 빈곳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좋아하던 사람을 만났다. 이제는 결혼을 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어 남아 있다. 삶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남자는 그 속에서 무언가에 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연히 만난 어느 무도가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집중과 희망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남자는 결심하게 된다.


   예술가인 그는 좀 엉뚱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을 고집하지만 그에게도 사랑은 있다. 유부녀를 사랑하게 된 이남자의 모습은 안쓰럽다.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아마도 그는 사랑을 할줄 모른다. 자신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지만 좀처럼 말 하는것은 쉽지 않다. 그의 삶은 망설임과 조바심의 연속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모아서 노래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감정을 모아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채우지 못한 감정을 모아서 세상을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두아이의 엄마가된 그녀는 요즘 고민이 많다. 아이들을 키우느라고 중단했던 자신의 일을 되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흘러 버린 시간은 그녀에게 초조한 긴장을 안겨준다. 애니메이션 화가로 다시 일을 하기로 결심했지만, 쉽지 않다. 그녀는 불안하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시간은 결코 되돌릴수 없다. 더 이상 늦으면 후회스러운 일만 생긴다. 그녀는 결심한다. 자신의 모습을 찾기로 말이다.


   코흘리던 아이가 자라서 장성한 어른이 되었다. 장성한 아이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다. 이제 죽음을 앞둔 그의 삶에는 여러명의 가족을 얻었다. 하지만 그 시간속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기도 했다. 이제 그는 자신이 기억했던 모습을 그림에 담고 싶어 한다. 자신의 행복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죽음의 그늘에서 행복의 기억만을 가지고 가려고 한다. 하루하루를 바라보던 노인의 눈에는, 자신의 핏줄들이 만들고 있는 삶의 풍경들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노인은 결심한다. 자신은 이 모든것들을 눈으로 보고 기억하겠다고 말이다.

우리의 삶의 모습처럼, 영화속 사람들의 모습도 지극히 평범하다.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의 모습처럼 그들이 고민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삶의 모습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삶의 모습과 시선으로 다짐과 후회를 번갈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의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인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녹차의 맛, 그리고 일상의 행복


   각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던 그들 가족에게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죽었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가족은,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그림을 보게 된다. 그 그림책에는 각각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할아버지가 죽기전에 자신의 기억을 모아서 그려놓은 그림책이었다. 남은 가족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그림책을 보며 웃음 짓는다. 그들도 미쳐 깨닫지 못한 시간의 모습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평범하고도 소소한 자신들의 진정한 삶의 모습이었다.


   흐리던 하늘이 걷히고 해가 뜬다. 침울했던 사람들에게 멋진 햇살이 비춘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우울하지는 않다. 슬픔과 기쁨은 모두 하나의 감정이다. 삶의 모습은 이렇듯 긴 감정의 굴곡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일지도 모른다.

   짝사랑하던 여학생과 아이는 친해졌다. 철봉을 거꾸로 넘지 못하던 한 아이는 드디어 철봉을 넘게 되었다. 삶에 집중하지 못하던 청년은 다시 자신의 삶에 촛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포기할뻔 했던 자신의 꿈을 아이의 엄마는 다시 찾게 되었다.



녹차의 맛(茶の味: The Taste Of Tea)
감독 : 이시히 가츠히토
출연 : 반노 마야, 사토 타카히로, 아사노 타다노부,테즈카 사토미
2004년 일본 작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어느 누군가에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 화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의 시간들은 이런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속 그들처럼 작은 삶의 모습속에서 따스한 감정과 고민을 극복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주 마시는 녹차의 맛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마시면 마실수록 느껴지는 담백한 맛처럼, 우리의 인생도 비슷할 것이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시간, 녹차의 맛과 함께 가족과 소소한 일상의 맛을 느껴볼수 있는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