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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풍경 스케치 - 잠시 걸음을 멈추다.

by G_Gatsby 2009. 2. 6.

   여유롭다는 것은 비단 시간적인 여유만은 아닌것 같다.

   아침에 눈뜨기 바쁘게 출근을 하고 이것저것 일이라는것을 하게 되고, 마치면 편히 쉴수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우리가 영위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마치 시간표에 나를 맞추듯, 시간의 흐름을 잃어 버리고 매몰되어 버리면 이것은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삶의 여유로움도, 나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하기가 어렵다.

   짜여진 시간속에서 여유로움을 가진다는 것. 이것은 내가 서있는 곳을 정확히 알수 있는 시간이 된다. 짜여진 시간속에서도 여유로울수 있다는 것. 그것은 적어도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느낄수 있는 감정이다. 복잡한 커피숍안에서도, 사람과 부대끼는 전철안에서도 문득 문득 나도 알수 없는 여유로움은 찾아 온다.




계단, 잠시 걸음을 멈추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무렵. 지저분한 도로를 따라 리어카를 몰고 가는 허리굽은 할머니를 본다. 할머니는 거리에 놓여진 폐지를 찾는데 집중한다. 이제 손자와 함께 쉬어도 될 나이에, 할머니는 저녁이 찾아오는 시간까지 리어카를 몰고 사람들이 잘 쳐다보지 않는 거리의 바닥시선을 둔다.

   그러다가 익숙한 몸짓으로 어느 한곳에 리어카를 멈추고 허리를 편다. 허리를 펴고 나서야 할머니는 바닥에서 세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작은 슈퍼마켓에서는 역시나 익숙한 표정의 나이든 아저씨가 웃으며 나온다. 아저씨 손에 들린것은 손님들이 버리고간 캔과 작은 폐지들. 잠시나마 그들은 서로의 얼굴시선을 둔다. 이제서야 할머니 얼굴엔 웃음이 번진다.

   넉넉해 보이지 않은 아저씨의 옷차림과 할머니의 굽은 허리가 만들어 내는 거리의 풍경이 꽤나 어색하다. 아저씨는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할머니 외투 주머니에 얼른 넣는다. 할머니는 어색한듯 만류를 하지만 아저씨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다시 가게안으로 사라진다.
 
  아저씨가 사라진 후 할머니는 주머니에 있는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서 확인하고는 소중히 접어 다시 호주머니에 넣는다. 가야할 곳을 한번 쳐다 보며 작은 한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굽혀 리어커를 잡고 거리의 바닥시선을 둔다.

   새롭게 이사한 이곳에서 나는 소소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바라보곤 한다. 그저 관심을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소소한 풍경들이다. 그리고 그 소소한 풍경속에서 살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노인들의 풍경을 자주 바라 보는 것은, 그 풍경이 내가 앞으로 그려야할 시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멋진 옷을 입고 여행을 떠나는 노인의 웃음도, 손주를 보며 맘껏 웃는 목소리도, 자식을 기다리며 대문을 서성이는 짙은 그림자도,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는 투박한 굳은살도.. 앞으로 그려가야할 나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굽은 허리에서 보이는 생명력과, 거친 주름살에서 나오는 삶의 고단함과, 가식없이 바라보는 넉넉한 웃음을 사랑한다.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여유로움은 알수 없는 또 하나의 감정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서 느끼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은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가끔은 올라야할 계단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것은 단조로운 일상에서 맛볼수 있는 여유로움이다.  하루를 살며 우리는 어떤 풍경을 보고, 어떤 모습을 마음속에 스케치 했을까. 가끔은 가슴속 깊숙히 자신의 감정을 스케치 해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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