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이야기/영화본후.

파리(Paris) - 삶의 긴 호흡을 보다.

by G_Gatsby 2009. 2. 22.

삶은 만남의 연속이자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공간이 어디건 간에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그 특별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사람들은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되풀이 한다.

영화 '파리(Paris)'는 파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특별하지 않고 독특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 거미줄 처럼 엮인 인연의 끈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그려내는 모습은 아주 평범하고 단조롭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가 지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사람들이 엮여 있는 이 단순한 인연속에서 삶의 특별함을 담아낸다.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이별하며 태어나고 죽는다. 영화속 배경인 '파리(Paris)'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습도 그러하다.  그래서 영화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 특별함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인연인지도 모른다.

'줄리엣 비노쉬'가 특유의 미소를 보여준다.  물론 예전의 청순한 이미지는 사라지고 완숙한 중년의 여인으로 나타난다.'줄리엣 비노쉬'의 영화가 나오면 무척 반갑다. 여배우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어린시절에 보았던 영화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영화보기를 좋아했던 어린시절의 느낌이 되살아 난다. 아쉬운것은 청순한 그녀는 어느새 노인이 되고 있고 지켜보던 까까머리 학생의 머리엔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아마 새치일것이다. 아니 새치 이어야 한다)

Paris - 삶과 죽음

한 남자가 병원을 나와 거리를 걷는다.
남자의 표정이 우울하다.  의사는 그에게 심장이식을 하지 않으면 곧 죽을거라고 말했다. 수술을 하더라도 산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심장은 언제 멈출지 모른다. 머릿속에 죽음을 그리는 이 남자가 사는 곳은 파리(Paris)다.


" 풍경은 변함없이 평온하다. 하지만 그 풍경속의 사람들은 이시간에도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남자는 이제 삶과 죽음의 분명한 경계선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풍경을 바라 본다. 그것은 그에게 사랑과 꿈을 안겨준 곳이었고, 이별과 좌절을 안겨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마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 될 것이다.

영화는, 죽음이 찾아오는 한 남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늘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역동적이고 다양했다.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도시의 풍경과 냄새를 사랑했다. 영화는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저 지나치기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랑과 아픔, 삶과 죽음에 대하여 영화는 말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감정과 숨소리가 묻어나 있다. 모든 감정이 상반되어 교차하는 곳. 그곳은 죽음을 앞둔 그가 바라보는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 희망을 찾아 떠난다. 죽음을 극복해야 삶이 있고, 삶을 극복해야 죽음이 있다."


파리는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고 있고 멀고 먼 아프리카에서는 희망을 찾아 파리로 향하는 남자가 있다. 삶의 터전인 아프리카를 버리고 파리로 찾아 간다. 그에게 파리는 새로운 희망이자 이다. 그리고 첫눈에 반한 순수한 사랑이 있는 곳이다.  파리로 가는 길은 험하고 위험하다. 몇일을 차로 달리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리고 발각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파리는 새로운 삶의 공간이자 희망이다. 그것을 포기할순 없다. 그는 지금 파리로 간다.

Paris - 인연의 늪.

영화는 이제 파리라는 도시가 그려내는 풍경속 사람들을 그려낸다. 평온해 보이는 그곳에는 다양한 고민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복잡한 인연의 늪을 만들어 낸다. 인연의 늪은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나오기 힘들다. 사람들은 희망과 사랑을 찾아 그 늪을 헤메인다. 그리고 때로는 상처를 받는다.


" 보여지는 삶이 의미가 있을까? "

한때는 열정적으로 역사를 공부한 한 대학교수.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후에 삶의 혼돈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세상의 온갖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많고, 돈에도 욕심이 많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를 벗어날수 없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은 철저하게 의식을 배반한다. 그는 혼란스럽다. 남에게 보여주는 삶에 지쳐간다. 어처구니 없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사랑하게 된다. 맙소사. 이게 어디 정상적인 자신의 모습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이성의 배신감이 싫지는 않다.


그녀는 외모만큼 마음도 착하다. 커피한잔의 여유도 즐기며 평온한 시간을 살아간다. 그녀에게 사랑은 쉽게 찾아온다. 자신의 감정에 조금의 여백이라도 있으면 누구든 가능하다. 주변의 시선은 조숙한 그녀를 그리지만 그녀는 결코 그렇지 않다. 자신을 사랑하는 교수에게도 사랑의 감정을 남기고, 잘생긴 남자친구와도 그럭저럭 잘 지낸다. 아마 그녀는 모르겠지만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한 남자가 테라스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사랑을 느낀다. 아마 그녀를 보면 누구나 사랑을 느끼게 되나 보다. 그녀 역시 주고 받는 사랑에 익숙해져 있고, 언제든지 그 사랑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죽음을 앞둔 동생을 찾아간다. 그녀의 마음은 아프다. 그래서 과거보다 동생을 더 사랑해야 겠다고 마음 먹는다. 사랑을 잃고 상처받은 그녀는 동생과 함께 파리의 풍경을 바라본다. 이제 파리를 떠나야 하는 동생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이 여자,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한다. 그들은 결코 떠날수 없는 인연의 늪에 빠져 있다.

영화는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속에 만들어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라보는 삶은 평온하고 고요하지만, 그속에는 그들만의 역동적인 삶이 존재한다. 속고 속이기고, 위선과 배신이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죽음을 기다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삶을 준비한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삶은 이렇게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지만 그들이 그려내는 풍경의 모습은 언제나 고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숨이 차는걸 느끼는 그에게 내일이 과연 존재할까. 
죽음을 앞둔 사람은 아쉬움의 그림자가 길다. 내일을 기약할수 없는 그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사람과 사람사이는 이렇게 설명하기 힘든 인연의 끈이 존재하는가 보다. 

영화는 쉴새 없이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묘하게도 스쳐 지나치는 사람들의 삶은 서로 연관된 삶이 존재한다. 

한여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녀는 이미 헤어진 과거의 연인에게 유서를 남겼다. 그녀가 죽으면 이 파리에 뼈를 뿌려달라고 말이다. 이미 스쳐 지나간 인연인데 남자는 눈물이 난다. 사람은 영원히 떠나갔지만, 그에겐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늘 그대로인 풍경을 바라보며 이 남자는 그녀의 뼈가루를 하늘에 뿌린다. 파리는 남아 있고 그녀는 사라졌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과 내일. 파리의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이지만, 그속의 인연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하루하루 다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사랑과 이별이 번복된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는 무언가 그림자가 남아 있다. 변하지 않는 도시에서 만난 사랑과 인연의 기억이 그것이다. 변하지 않는 도시에서 그 기억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파리는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파리의 모습은 분명히 다르다.



이제 심장 수술을 받으러 떠난다. 그는 택시를 탄다.
창백해진 얼굴로 차창 밖의 파리를 바라본다. 아마 다시는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 바라보는 파리의 모습은 너무도 냉정하다. 자신은 죽어가지만 바라보는 도시는 너무도 태연하다. 파리의 모습은 변하지 않지만 이곳에 그는 많은 인연의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그 인연들은 각기 삶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죽음을 생각하며 파리를 떠나는 남자의 눈에 남루한 옷차림의 한 남자가 보인다. 멀고 먼 아프리카를 떠나서 죽을 고비를 넘긴 한 남자는 이제 파리에 도착했다. 그가 그톡록 바라던 파리의 풍경을 보고 있다. 아마 그는 사랑을 생각하고 희망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이 남자의 입가엔 미소가 머문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그곳은 파리다.



파리(Paris)
감독 : 세드릭 클라피쉬
출연 : 로맹 뒤리스, 줄리엣 비노쉬, 파리스 루치니, 멜라니 로랑
2008년 프랑스 작

영화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그려내진 않는다.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그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삶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함께 던진다. 물론 해답은 관객이 제각각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내내 펼쳐진다. 에펠탑이 있고 몽마르뜨 언덕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존재하며 아름다워 진다. 삶은 동일한 풍경속을 살아가는 인연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연들은 이 단순한 풍경을 보여주는 파리에서 서로간에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살아가고 죽어간다.

비단 영화가 보여주는 도시인 파리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모습도 그러하다. 우리도 그들처럼 수많은 인연을 만들어 내며 그 속에서 슬픔과 기쁨, 사랑과 배신, 희망과 절망을 함께 맛본다. 그리고 우리가 느낄 사이도 없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며, 죽음은 기억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 뜨린다. 도시의 외로움을 느낀다면 이 영화가 더 짙은 외로움을 안겨줄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외로움을 극복하는 힘을 줄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루하고 소박하지만 생각을 많이 던져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