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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단상(段想)

[진중권 칼럼] 전봇대 뽑기, 2MB의 후진국 행정 - 프레시안

by G_Gatsby 2008. 4. 3.

신문 읽다가 한심해서 한 마디 한다. 가금류에 속하는 어느 새와 동일한 사양의 두뇌를 가진 일부 언론에서는 전봇대 두 개 뽑은 각하의 치적을 칭송하기에 바쁘다. 전봇대는 전기를 보내는 장치를 넘어 타파해야 할 모든 규제의 상징이 되더니, 거의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하여 급기야 각하 같은 초인을 닮으려면 마음에서 뽑아버려야 할 낡은 생각의 상징이 되었다. 여기가 도대체 호모 사피엔스들이 모여 사는 인간 사회인가? 아니면 머리 짧은 닭대가리들이 모여 사는 양계장인가?

전봇대가 뽑혀 나간 대불공단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한겨레>에 따르면, 선박용 블록을 실은 트랜스포터 때문에 도로가 다 망가져간단다. 그거 수리하는 비용은 물론 국민 세금으로 대야 한다. 그 뿐인가? 문제가 된 그 트랜스포터는 올해 1월에 바뀐 법률 때문에 불법 차량으로 분류되어 한 동안 나다니지 못 하다가, 얼마 전에 올해 말까지만 한시적으로 운행이 허락되었다고 한다. 그 난리를 쳐서 전봇대 뽑아주었더니, 내년부터는 운행도 못하게 됐단다. 코미디를 해라, 코미디를….

대불공단의 전봇대

닭 머리는 '전봇대=규제'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전봇대 뽑기는 규제 완화와 별 관계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기업의 애로사항 들어주기에 해당한다. 원래 대불공단은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들을 위한 곳으로 설계되었다. 그런데 2000년도부터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한 조선업 관련 업체들이 대거 대불공간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점차 대형 선박의 블록을 수주하면서 2004년부터 전봇대가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전봇대의 지중화 사업은 이미 진행 중이었고, 문제는 그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한국전력의 규정에 따르면 이런 경우 지중화에 드는 비용은 100% 수익자가 부담하게 되어 있다. 그 규정은 내가 보기에 매우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내가 소유한 상가 앞에 전봇대들이 늘어서 있어 미관에도 안 좋고 차를 갖다 대기에도 불편하다 하자. 지중화로 인한 수익을 내가 보니 당연히 비용도 내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 보자. '우리 상가가 잘 되는 게 지역경제, 나아가 나라경제에 도움이 되니, 그 비용은 마땅히 한전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해야 한다.' 과연 이게 말이 될까?

규정에 따르면 이런 경우 지중화에 드는 비용은 '수익자 부담'이다. 한전의 입장은 기업에서 비용만 대면 언제든지 뽑아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대불공단의 경우 기업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기를 거부했고, 그래서 문제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이게 탁상행정과 무슨 관련 있는가? 지자체는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한전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사기업의 편의를 위해 공공의 세금을 함부로 쓸 수 있는가? 지자체와 한전은 제 원칙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각하 말씀 한 마디에 날아가 버렸다.

초법적 전시행정

그러잖아도 대불공단에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 영암전력은 1년에 15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단다. 다시 말해 국민 세금을 가지고 거기에 입주한 기업들에 연간 150억씩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중화에 따르는 비용 정도는 업체들이 연대해서 지불했어야 하지 않을까? 정 그게 부담스럽다면, 또 다른 수익자인 대기업 조선사와 공동 부담하면 된다. 그게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각하의 말 한 마디에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을 내는 국민과 주민의 어깨 위로 떨어지고 만다. 이게 시장경제인가?

한국정보통신대 권영선 교수의 말이다.

"대불공단 전선 지중화 문제는 대불공단의 선박 블록 생산 기업에 하청을 준 대기업과 대불공단의 선박 블록 생산 기업들이 전선 지중화 때 절감되는 비용이 지중화 비용보다 큰지 작은지를 판단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한겨레> 2008년 1월 23일)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규정'을 간단히 무력화시킨다. 이게 법치일까? 아니면 수령님 교시 정치일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사진에 찍히는 전봇대 뒤로 사진에 찍히지 않는 더 복잡한 사정이 숨어 있다.

애초에 대불공단은 선박용 블록 만드는 업체들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선박용 블록을 운반하는 그 큰 차량들이 다니려면 전봇대 두 개만이 아니라, 도로와 교량 등 인프라 전체를 리모델링해야 한다. 거기에 26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물론 영암 군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재정이 아니다. 그리하여 영암군에서는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청해 놓았다고 한다. 결국 그 비용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판이다. 기업에 법인세 깎아주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권. 그 돈을 무슨 재주로 마련하는지 지켜보자.

2MB 따라 배우기

한 마디로 탁상행정 뿌리 뽑겠다며, 기껏 원칙을 뽑아내 버리고, 고작 전시행정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대불공단이 야단맞자 창원에서도 한전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하여 전봇대를 땅에 묻기로 했단다. 그 뒤를 이어 서울, 인천, 강원도 등 여기저기 지자체에서 전선 지중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모양이다. 각하가 전봇대로 짭짤한 재미를 보자, 전국의 리틀 이명박이 거국적으로 전봇대 뽑기 운동에 나선 것이다. 전봇대를 뽑자, 전봇대를 뽑자.

"전봇대가 행정 규제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부각된 가운데 전주나 철탑 지중화(地中化)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지중화 사업비를 충당하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18대 총선을 앞두고 지중화를 공약으로까지 하는 후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경제> 2008년 3월 13일)

지중화 방식은 전봇대 방식에 비해 비용이 10배가 든단다. 결국 앞으로 전력 송출에 지금보다 10배의 비용을 쓰겠다는 얘기. 아무리 지중화 사업이 필요하다 해도, 경제도 어려운 마당에 전봇대 뽑기 운동이 국민과 주민의 세금을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할 분야일까? '작은 정부' 지향한다더니 예산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전봇대 뽑기 위해 발행하는 지방채는 결국 지자체의 빚. 리틀 이명박들이 생색내기 위해 벌이는 그 빚잔치의 비용은 결국 주민들이 갚아야 할 게다. 참고로, 전국의 전신주를 모두 지중화하는 데에는 450조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전두환 고스톱

전봇대는 과도한 규제나 탁상행정이 아니라 비용을 누가 대느냐의 문제다. 알렉산더가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리듯, 각하께서는 그 번거로운 난제를 칼 같은 말씀 한 마디로 깔끔히 베어 버리셨다. '그런 건 앞으로 국민과 주민의 세금으로 부담하도록 해.' 그 결과 생색은 각하가 내고, 비용은 졸지에 서민이 떠안게 됐다. 이것이 그 잘난 전봇대 해프닝의 본질이다. 이걸 행정이라 불러야 할일까? 이건 박정희식 명령경제, 아니, 그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전두환 고스톱이다.

이명박 정권은 앞으로 법인세를 5% 인하할 거란다. 하지만 소득세 깎아준다는 얘기는 없다. 법인세 인하로 발생하는 세수결손은 무엇으로 충당할까? 정부 예산을 10% 줄이겠다고 한다. 얼마나 실용적인지, 예산 줄이는 것도 명령 한 마디로 끝난다. 예산을 줄여도, 초법적으로 기업에 퍼주기를 하는 정권이 거기서 기업에 돌아갈 몫을 줄일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세수의 결손은 결국 예산 가운데 서민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여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 이게 바로 MB식 실용주의다.

그는 그저 눈앞에 두 개의 전봇대를 보았을 뿐이다. 그걸 왜 못 뽑는가? 아마 이해가 안 됐을 게다. 맞아, 그게 다 탁상행정 때문이야. 뽑아. 예, 뽑았습니다. 거봐, 금방 할 수 있는 것을 왜 못 해? 내가 나서니까 금방 해결되잖아. 으쓱으쓱.

이게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다. 눈에 뵈는 현상만 보고 즉흥적으로 내뱉는 대책. 2MB는 아무래도 눈에 뵈는 현상을 넘어 몇 단계 뒤까지 생각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용량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짧아도 그렇지,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무슨 정책을 일수 찍듯이 내놓느냐….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출처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40309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