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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37

비가오는 길에 마흔아홉살 고아를 만나다. 지방의 한 도시. 비가 오는 낯선 곳에서 택시를 탔다. 습기 머금고 달려가는 장거리 택시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낯설기만 한데,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돌아오는 운전 기사 아저씨의 인삿말이 친근하다. 네박자 정겨운 트로트 리듬이 울려 퍼지던 택시안. 점잖은척 앉아 있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라디오 채널을 딴 곳으로 돌린다.가끔 장거리 택시를 타면 무료함을 달래려고 기사 아저씨에게 똑같은 레퍼토리로 말을 건다. " 요즘 경기 안좋아서 힘드시죠? " 인상좋은 아저씨의 입에서는 전문가 못지 않은 비판과 불만이 터져 나온다. 세상 살기 좋아졌다는 말은 갈수록 듣기 힘들다. 차림새가 좀 수상했던지 무슨일을 하냐고 나한테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십여분이 흘러가니 어느새 가까운 이웃처럼 주고 받는 대화가 따뜻해 .. 2008. 6. 19.
은밀한 유행, 악몽으로 막을 내리다. " 은밀한 유행 따라잡기 " 유행 이라는것이 좀 묘해서 평소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무작정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한참 뒤에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 몇 해 전쯤 속옷을 입지 않는 것이 유행처럼 스쳐간 적이 있다. 잠을 잘때 속옷을 입지 않고 자는 사람은 제법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속옷을 입지 않고 겉옷만으로 거리를 활보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취향에 맞지도 않은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졌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다만 한동안 속옷을 입지 않고 거리를 활보 했고, 나름데로 자유로운 감각과 느낌을 즐겼던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변태적 기질이나 노출증 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결단코 오해다. " 자만심, 벼는 덜익을수록 고개를 든다" 그 시기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2008. 6. 16.
어둠의 길, 그리고 행복한 사람 " 나는 석탄캐는 광부" 이젠 사양길에 접어든 탄광촌에서 일하는 어느 광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검은 땀으로 물든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8시간만에 다시 만난 하늘을 바라본다. 그가 걸어 나온 길은 어둠속에 갇혀 보이지도 않는다. 지상에서 900미터 아래로 뚤린 길. 끝없는 어둠의 소용돌이 속으로 오늘도 걸어 간다. 머리에 달린 조그마한 불빛은 내 생명의 유일한 빛. 바로 앞에 놓인 어둠은 내 생존의 유일한 빛. 누가 물으면 나는 칠순 노모의 외아들. 누가 물으면 나는 한 아이의 아버지. 누가 물으면 나는 석탄캐는 광부. 햇빛 없는 그곳에서 펼쳐지는 8시간의 중노동.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는 것도 힘에 겨워 보인다. 매일 유서를 쓰고 걸어 들어가는 그 길은 죽음의 공포가 함께 있는 길. 말끔하게 샤워를 .. 2008. 6. 15.
비가 그친날, 무지개를 보다 " 이등병의 기억" 내가 근무했던 군부대는 휴전선이 가까운 곳 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구보를 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한탄강이 보였다. 민간인은 보기 힘들었고 버스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늘 긴장감이 풀리지않는 곳 이었다. 훈련소 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서 군용 트럭에 올라 탔다. 점심무렵 파주에서 출발한 차는, 해가 저물어서야 멈춰 섰다. 매섭게 바람이 불어오던 초겨울 날씨. 내 눈에 펼쳐진 것은 하얀 눈, 폐타이어로 위장한 초소 뿐이었다. 인적 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삭막함. 그 낯설고 두려운 곳에서 나의 이등병 생활은 시작 되었다. 부대 적응에 애를 먹고 있던 나를 무척 갈구던 한 고참이 있었다. 나보다 작대기 하나 더 많을 뿐인데 부대장 보다 훨씬 더 높게만 보.. 2008.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