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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비가 그친날, 무지개를 보다

by G_Gatsby 2008. 6. 11.


" 이등병의 기억"

내가 근무했던 군부대는 휴전선이 가까운 곳 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구보를 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한탄강이 보였다.
민간인은 보기 힘들었고 버스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늘 긴장감이 풀리지않는 곳 이었다.

훈련소 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서 군용 트럭에 올라 탔다. 점심무렵 파주에서 출발한 차는, 해가 저물어서야 멈춰 섰다.
매섭게 바람이 불어오던 초겨울 날씨.
내 눈에 펼쳐진 것은 하얀 눈, 폐타이어로 위장한 초소 뿐이었다.
인적 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삭막함.
그 낯설고 두려운 곳에서 나의 이등병 생활은 시작 되었다.

부대 적응에 애를 먹고 있던 나를 무척 갈구던 한 고참이 있었다.
나보다 작대기 하나 더 많을 뿐인데 부대장 보다 훨씬 더 높게만 보이는 존재 였다.
얼굴에 웃음 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고, 마치 이복 형 처럼 나를 몰아 세웠다.
첫 겨울을 맞는 이등병의 하루는 그렇게 힘들게 시작 되었다.

" 성탄절에 울려퍼진 rainbow eyes"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해 성탄절.
조개탄이 활활 타오르던 부대내 작은 교회에서 위문 공연이 있었다.
인근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러와 편지를 읽어 주고, 쵸코파이도 나눠주고, 목사님은 좋은 말씀도 해주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과 눈밖에 없었던 이등병에게 그날은 축복 받은 해방일이었다.

부대 장병들도 몇몇이 나가서 보답의 표시로 찬송가를 불었다.
그때 였다. 나를 갈구던 작대기 두개를 단 그 고참이 갑자기 기타를 하나 메고 무대로 향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고참의 입에서 나온 노래는 놀랍게도 rainbow 의 rainbow eyes 였다.
당시 박일문씨의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라는 책속에서 딥퍼플의 음악을 찾았었던 나에게는 너무도 반가운 노래였다. 그리고 그 어울리지 않는 얼굴에서 나오는 완벽한 미성에 반해 버렸다.

그 날 이후, 난 이 고참과 무척 친해졌다. 딥퍼플과 레인보우에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음악에 대한 잡담은 군복 속에 감추어진 재미난 생활 이었다.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자, 악랄했던 사람은 나에게 가장 친절한 고참이 되었다. 나중에 전역할때가 되어서야,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알고 허탈했었지만 전역의 그날까지 충성을 다했다. 성탄절 눈덮인 군부대의 낡은 교회에서 흘러 나온 노래는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 비가 그친날 나타나는 무지개"

군대 생활을 하면서 후임으로 가수가 들어온적도 있었고, 나중에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를 가르치는 코치의 실제 인물이 후임으로 들어온 적도 있지만, 그 고참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렬 했다.
 
전역을 하고 난뒤, 음악 밴드를 준비중이던 고참을 만날 수 있었다. 불과 몇달 사이에 많이 변해 버린 얼굴과 목소리가 낯설었지만, 무척 반가 웠다. 비록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 밴드에 불과 했지만, 콘서트를 열게 되면 내가 첫번째 입장권을 사는 팬이 될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아쉽게 그 고참의 노래는 다시 들을 수 없었다. 우연찮게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올때면 여지 없이 그 고참이 생각 난다. 노래가 너무 길어서 라디오에서도 잘 듣기 어렵다. 그래서 노래가 더 반갑다.

어제 늦은밤  편의점 앞에서 우연찮게 이 음악을 들었다. 살면서 딱 한번 들었을 뿐인데, 나는 어김없이 그해 겨울  낡은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미성을 생각해 냈다. 하지만 이제 그 고참의 노래는 결코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첫 콘서트에 반드시 초대한다고 약속했던  그 고참은, 그해 겨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가 온뒤에 나타나는 무지개는 내가 보고 싶다고 항상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이 오던 겨울, 삐걱거리는 의자위에서 군복을 입고,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마음을 노래 했던 그 사람의 노래말을 생각한다.  추억은 마치 무지개처럼 어느순간 나타나 진한 그리움만 던져 주고 가는가 보다.

rainbow eyes
-rainbow-



She's been gone since yesterday Oh I didn't care
Never cared for yesterdays Fancies in the air

No sighs or mysteries She lay golden in the sun
No broken harmonies But I've lost my way
She had rainbow eyes Rainbow eyes Rainbow eyes

Love should be a simple blend. A whispering on the shore
No clever words you can't defend. They lead to never more

No sighs or mysteries. She lay golden in the sun
No broken harmonies. But I've lost my way
She had rainbow eyes. Rainbow eyes Rainbow eyes

Summer nights are colder now. They've taken down the fair
All the lights have died somehow. Or were they ever there

No sighs or mysteries . She lay golden in the sun
No broken harmonies . But I've lost my way
She had rainbow eyes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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