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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순례자, 이강오 교수님의 이야기

by G_Gatsby 2008. 8. 10.


순례자.

사랑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에로스와, 필로스, 그리고 아가페적인 사랑이 그것이다.
그중에 가장 으뜸은 아가페인데, 그것은 자신을 소멸시키는 사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성자라 일컫는 사람들은 그것을 실천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이 실천한 사랑은 전쟁과 군대도 이루지 못한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며칠전 한편의 짧은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암으로 고생하던 한 대학교수가 자신의 전재산을 사회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나눔과 베품을 실천했다던 그녀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가진 것을 모두 베푸는 사랑의 메시지 였다. 
조선대 간호학과 이강오 교수님의 이야기다.

산티아고로 떠나는 순례자에게 길과 바람과 풍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도 바로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질 때 느낄수 있으며,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열정은, 존재의 위대함을 깨달을 때 나타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삶의 흔적은 그림자와 함께 남는다. 흔적은 사라지지만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존재에 대한 인식은, 주위를 둘러보고 집중함으로 생긴다. 그것은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단단한 끈이 된다. 이러한 존재를 깨닫고 그 속에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자유로움과 살아있음, 그리고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며 전파하는 사람을 우리는 성자성인으로 부른다.

소유와 욕심에 물들어 가는 세상에서, 이강오 교수님이 보여준 사랑의 실천이 아름다운 이유도 그러하다. 사랑의 말은 달콤하고 쉽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인이 된 그분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은 늘 유한한 생물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무한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실천에 있다. 그분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은 실천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열정을 불러오고, 그것을 아낌없이 소멸시켜야 한다. 소멸은 거래가 아닌 나눔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한싸움의 끝에는 평화로운 피로감이 있다. 삶의 종착역은 또 다른 사랑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평화로운 피로감속에 마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피로감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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