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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목숨을 건 농성의 명제: 인간답게살아 보자

by G_Gatsby 2009. 1. 9.

새해가 다가왔다.
새롭다는 것은 늘 희망을 품게 한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이 있을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을 기원하고, 첫아이를 임신한 초보 아내는 자신의 아이가 나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거리는 우울한 소식들만 전해주며 우리들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가지만 살아가는 우리는 내심 좀 더 나은 내일이 올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매서운 추위.
끝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 얼어붙은 손과 발. 배고픔 조차 느낄수 없을만큼 주린 배.
하늘위 백미터 위에 보름이 넘도록 죽음과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나를 눈물 나게 만든다.
세상사, 돌아보면 삶과의 처절한 싸움이라고 했던가.
직장을 잃고 생존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죽음의 하늘아래 홀로 버티고 있는 한장의 사진에 가슴이 아파온다.

 


세상에 놓여 있는 불합리한 것들. 그 불합리한 것들과 처절하게 싸우며 지쳐 버린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호소해도 귀담아 듣지 않는 세상속에서, 그들은 이제 막다른 외침을 매서운 겨울밤 하늘아래에서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체제를 인정하고, 체제가 요구한 사회적 의무들을 이행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체제아래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리고 체제는, 그 구성원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적인 국가임에 틀림 없다.

아마도 우리가 살아온 최근의 역사속에는, 우리가 해야할 의무만을 강요당한채 우리가 당연히 얻어야할 정당한 권리들은 무시되어 왔다.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당했고, 사회적 기득권은 불손한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해 왔으며 , 세뇌된 사람들은 투쟁과 불합리에 대한 목소리는 무조건 배척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아마도 우리가 살아온 최근의 역사들은 그러했다. 아니, 요즘 몇개월간의 세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이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며, 불행한 일이다.

슈퍼맨은,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건물을 파괴하며 날아 다닌다. 무수한 전쟁의 영웅들은 물질적 가치 위에 있는 인간의 가치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해낸다. 납치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의 삶속에서 인간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러하지 못하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쓰러져간 노동자의 죽음이 그러하다. 부당한 대우를 막아달라고 호소하지만 우리의 체제와 사회는 외면한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가 되어버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질수 있는 가장 막다른 골목에서의 싸움 뿐이다. 인간들의 역사가 그러했고, 2009년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에서의 풍경도 그러하다.

직장을 잃어 버린 자의 고통. 생존의 위협때문에 공포스러운 삶의 모습들. 우리는 스스로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언제든 저 높은 곳에서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세상에 홀로 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부와 권력은 높은 곳을 향하기만 하고, 생존은 지극히 낮은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넉넉한 웃음을 짓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인것을 기억한다. 비록 마음속 깊은 곳에 억울함의 피멍이 들어, 더이상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채, 매서운 겨울바람속에서 외롭게 외치고 있지만 말이다. 부디, 그들의 얼굴에 다시 웃음을 머금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살수 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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