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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이방인.

by G_Gatsby 2009. 2. 19.

고향을 그리워 하는 것은, 아득한 풍경속에 그려진 익숙한 모습 때문이고 그 풍경속에 새겨진 사람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늘 이렇게 포근하고 넉넉한 감정을 안겨준다.

하지만 가끔은 주변의 익숙한 풍경에서도 알수 없는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그런 낯설음을 외로움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슴속 한켠에 담아둔 그리움이라고 했다. 외로움과 그리움. 풍경은 익숙하지만, 그 속에 사람이 사라지고 없을때가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인지도 모른다.

이방인 하나.

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가지런한 길을 걷는다. 길은 익숙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낯설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을 피해 유아용품을 파는 가게 옆 계단에 선다.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이놈의 담배 생각은 간절하다. 십수년전 군대에서 전투담배를 배운후, 아직도 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한곳에 서서 피워야 한다.

군대. 군대는 나에게 쵸코파이에 목숨을 걸수 있을것 같은 뜨거운 본능을 알게 해주었고, 찬물에도 라면을 먹을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담배를 필때에는 부동자세로 피우는 버릇을 남겨주었다.

무심코 바라본 거리. 어디에선가 낯선 모습의 외국인이 다가온다. 유아용품점 앞에 서더니 조그맣고 귀여운 옷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유난히 검은 눈썹과 큰눈. 덥수룩한 머리에 갈색 점퍼를 입은 그의 눈이 꽤 진지하다. 아마도 동남아시아나 인도를 국적으로 가진 사람인것 같다. 복장을 보니 근로자는 아닌것 같고 근처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늦깍이 학생 같아 보인다. 그도 분명 나처럼 이곳의 사람들과는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 이리라. 웬지 모를 동질감 마저 느낀다.

뭔가 말을 걸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국어 조차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나의 처지를 생각하곤 생각을 접었다. 유심히 옷들을 바라보던 그와 눈이 마추친다. 나는 그저 생긋 웃어준다. 진지하게 그가 나에게 말을 건다.

"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당황스럽다.  같은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동질감마저 느꼈건만.. 비록 면도를 안한 나의 모습이 아저씨의 모습일지라 하더라도 유아용품과 내가 대체 어울리기나 한것인가. 살짝 배신감이 밀려온다. 아이를 키워본적도 없는 나는 양말 한짝이 얼마인지도 잘 모른다. 그러고 보니 제법 유창한 한국어다.

" 저.. 아이 돈 노우.. 저 주인 아니에요...."

분명한것은 내가 2개국어를 구사했다는 거다.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는 다시 아이의 옷을 유심히 쳐다본다. 그래도 가게 주인은 나오질 않는다. 꽤 오랜시간 작은 양말과 옷들을 쳐다본다. 그리고 순간순간 행복한 표정이 얼굴에 스친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으리라. 어쩌면 한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옷을 입은 아이를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지켜보던 나도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가족을 생각하고 사랑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모습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우리는 늘 같은 감정을 가진다. 아마도 그 역시 따듯한 가족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그가 다시 길을 떠난다. 몇발자국 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며  옷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씽긋 웃고 씩씩하게 길을 걷는다. 나도 그를 따라 길을 걷는다. 아까와는 달리 그의 어깨가 꽤나 믿음직해 보인다. 발걸음도 가벼워 보인다. 그는 이내 전철역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속에 파묻혀 버린다.

유독 눈에 띄는 외모. 우리가 선호하지 않는 인종을 가졌지만 그는 지금의 풍경에 무척 잘 어울려 보인다. 먼 이국땅에 와서 이방인이 되었지만 우리들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그는 분명 이방인이다.

이방인 둘.

다시 길을 나서며 풍경을 바라본다. 익숙한 풍경과 낯선 사람들. 이곳의 풍경은 그대로이지만 이곳에 머문 사람들은 매일 매일 바뀌어 간다. 죽은 자의 기억이 존재하고, 산자의 기억이 존재하는 곳.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간 곳. 어쩌면 이 길을 걷는 나도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다. 이방인.

나즈막한 내리막을 지나가니 조그마한 문구점이 보인다. 쪼그리고 앉아서 오락을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 옆에는 주렁주렁 잡다한 물건들이 달려 있다. 춥지도 않은지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집중한다. 이 아이들도 나와 같은 이방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알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진다. 옆에 서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들의 대화소리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옆에 웬 여자아이가 오더니 문구점 앞에 주렁주렁 달린 곳을 유심히 지켜본다. 아이의 얼굴이 새침하고  귀엽다. 아마 나도 저럴때가 있었겠지.

아이가 갑자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말을 건다.

"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아..이런...
내일은 꼭 면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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