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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마주잡은 손.

by G_Gatsby 2009. 4. 6.

헤르만 헤세 처럼 아름다운 숲을 보며 산책을 하진 못하지만,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 보는 것도 산책을 하는 재미 일것이다. 주말이 주는 재미는 평일에는 느끼지 못하는 이러한 여유로움이 아닌가 싶다.

바쁜 일상속에서는 자신이 가는 길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의 풍경에 눈길을 두질 않는다. 지하철을 오르내리고 버스를 갈아타지만 기억나는 것은 몸속 깊숙한 곳에서 전해져 오는 피곤함뿐인것 같다. 그래서 소소한 걸음으로 내딛는 산책의 여유로움은 무척 달콤하다.

시선 하나.

여섯살이나 되었을까. 오누이 같은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걷는다.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낮설어 하는 눈빛이 이동네 아이는 아닌것 같다. 조금 큰 아이가 오빠일 것이고 작고 앙증맞은 아이가 누이일 것이다. 나란히 걷는 모습이 꼭 인형같다.

어린 아이는 큰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새롭고 낯선 곳에서 기댈것은 오빠의 따뜻한 체온뿐일 것이다. 그렇게 두리번 거리면서 길을 걸어 온다. 아이들 모습이 너무 귀엽다.

어느덧 나에게 다가온다. 손을 꼭 잡고 걸어오는 아이들 모습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나는 살짝 작은 아이를 보면서 웃어준다. 커다란 눈망울이 꼭 인형같다. 낯선 아저씨의 웃음에 아이는 오빠의 손을 힘주어 잡는다. 겁을 먹었는지 눈망울이 새침해진다. 주말에도 꼭 면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치고 지나간다. 비록 관상학적 구조가 비호감의 경계선을 넘어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비켜나는 모습이 조금은 섭섭하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를 다시 되돌아 본다. 마치 하얀 눈위에 인형같은 아이들이 남긴 발자국이 보일것만 같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모습에서 따뜻한 사랑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살며시 다시 미소를 짓는다.

기억 하나.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체온을 먹고 자라난다. 엄마의 체온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자라간다. 그리고 그 아이가 다시 엄마가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 따뜻한 체온을 전달해 준다. 체온속에는 무한한 사랑이 담겨져 있다.

아이는 형제들과 친구들의 체온을 느끼며 자란다. 따뜻한 체온을 느낄수 있을때, 우리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남녀가 사랑하는 것도, 서로의 체온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은 따뜻한 체온을 타고 전해진다.

세상속에 묻혀 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느낄 기회를 잃어 버린다. 체온을 느끼지 못하면서 사람들과의 감정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 마치 세상을 홀로 걷는 듯한 외로움에 빠지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부모 형제의 체온을 느낀지 꽤 오래 되었다. 어릴적 세상이 무섭지 않은것도 그들의 체온을 느낄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먹으며 자랐다. 

아이들의 맞잡은 손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진정 나이를 먹어가면서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이다. 체온으로 전해져 오는 따뜻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러한 사랑이 만들어 내는 기쁨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체온은 느낄수 없지만 숨소리는 들을 수 있다. 그 익숙한 말소리를 들으며 다시한번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어릴적 느껴지던 그들의 체온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변하는 세상속에서 변하지 않을 유일한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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