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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어버이날,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보다.

by G_Gatsby 2009. 5. 9.

어버이날 이었습니다.
부모님이랑 오랫동안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이제 다 커버려 흰머리가 나려고 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그래도 오랜시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효도는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자주 듣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어른들의 가슴에는 카네이션이 만발합니다. 퇴근시간이 되니 거리가 북적거립니다. 오늘만큼은 세상 모든곳에서 사랑이 넘쳐나는것 같았습니다.

시선 하나.

담배를 사기 위해서 동네 슈퍼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정오를 넘었지만 아직 햇살은 뜨겁게 내리고 있습니다. 작은 슈퍼앞에는 물건을 내놓고 파는 평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평상뒤에는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평상앞에는 폐지를 담은 리어카가 놓여 있었습니다. 얼마전 비가 오는 길에 만났던 할아버지가 끄는 리어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 그늘진 곳에서 그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리쬐는 해를 피할곳은 그곳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노란색 민방위 모자, 회색빛 작업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작은 체구를 웅크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노란색 빵 한봉지와 그 옆에 놓인 빨간색 우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늦은 점심을 몇백원의 빵과 우유로 대신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다시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빵을 먹는 할아버지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오랜시간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볼수 있는 그런 떨림이었습니다. 퀭한 눈아래의 뺨위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아파옵니다.

기억 하나.

사람이 무언가를 먹는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합니다. 건강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가에도 행복한 미소가 있어야 합니다. 먹는 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먹는 모습에 목이 메어 보기는 처음 입니다. 손을 떨며 급하게 빵을 먹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슬퍼 보였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 이었습니다.

가난은 게으른자의 결과물이라며, 가난을 죄악시 하는 어느 종교지도자의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경쟁에서 패배한 낙오자일뿐이라는 한 대학생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틀린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난한 것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은 별개의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말입니다.

어버이날이었습니다.
그 누추한 작업복위에는 카네이션 대신, 노인이 흘린 땀방울과 노동의 흔적들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름진 이마위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들만 남아있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그늘진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돌아다니는 거리의 한 구석에서 말입니다.

시선 둘.

담배를 사들고 나와 할어버지 주위에서 담배를 입에 물어 봅니다.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데 끼어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마 할아버지도 인상이 험악한 낯선 남자가 식사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진 않을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 봅니다.

할아버지의 식사가 끝날무렵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갑니다.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선량한 눈빛이 마주칩니다. 다가가 옆에 살포시 앉아 봅니다. 폐지 수집이 잘되시냐고 물어 봅니다. 요즘은 잘 안된다고 말을 합니다. 말하는 할아버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할아버지의 등을 손으로 만져봅니다. 앙상한 뼈가 만져질때마다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를 한손으로 꼭 안아봅니다. 식사 거르지 말고 하시라는 말과 함께 만원짜리 몇장을 손에 쥐어 드립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할아버지를 꼭 안아드립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다시 거리를 걷습니다.

그 어떤것도 우리들의 풍경을 변화시키긴 어렵습니다.
그저 길을 걷다가 마주친 사람에게 느끼는 작은 동정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이 사회에 대해서 느끼는 작은 죄책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을 살면서 무언가 하나를 가슴에 담아 봅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하루를 살아갈수 있게 나를 낳아주신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또한 함께 숨쉬며 살아가게 만들어준 우리 사회의 어버이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오늘을 기억해야 할것 같습니다. 사람이 먹는 모습이 그렇게 슬플수 있다는것을 말입니다. 그 슬픈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가 걷는 인생의 길도 이렇게 슬픔이 가득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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