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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by G_Gatsby 2009. 5. 19.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몇 해전에 새로 닦인 이곳은 속도를 내기 아주 좋은 도로다. 경상도와 충청도가 이어지는 그곳엔, 유난히 터널이 많이 있다.

속도를 내던 차가 터널로 들어가면 묘한 기분에 빠진다. 자유롭게 뻗어 있는 빛의 도로에서, 좁고 어두운 터널로 들어갈때면 마치 또 다른 세상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익숙하지 않은 어둠으로의 이동.  시선은 터널속의 밝은 불빛을 쫓아서 앞으로 나아간다. 속도감 조차 느낄수 없을만큼 고요하고 적막하다.

기억 #1

대전엑스포가 열리기 얼마 전이었다.
벌써 아주 먼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그즈음에 대전 인근을 여행한 적이 있다. 군입대를 앞두고 난생처음 떠난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스무살 시절에는 꽤 많은 고민과 번뇌가 있었던것 같다. 군대라는 곳이 주는 느낌도 좋지 않았지만, 몸은 어느새 성인이 되어버리고 마음은 항상 그곳에 머물러 고여가고 있다는 생각이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만이 존재했었다.

조치원으로 가는 삼등 열차안에는 이웃장터로 향하는 할머니들의 수줍은 물건들이 가득차 있었고, 모두가 이웃인듯 시끌시끌한 풍경만이 남아 있었다. 홀로 여행하는 이방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들만의 소소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기차의 가장 뒤쪽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타볼수 없지만 삼등열차에서는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뒤에서 바라볼수가 있었다.

시원한 여름바람이 불어왔고, 넓게 펼쳐지는 풍경은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기차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이 지나갔고,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높게만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기차가 긴 터널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터널이 있는것을 알지 못했기에 순간 닥쳐온 어둠은 너무도 공포스러웠다. 빛은 점점 작아지고 주변의 풍경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어둠속에 귀를 찢을듯한 소음은 공포감을 더해주었다. 한동안 숨조차 쉬지 못하며 움직이지 못했다. 생각지도 않은 어둠속에 갇혀 뒤로만 흘러가는 스스로가 너무 두려웠다.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다시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쉴수 있었다. 공포감에 질려 다시 객실로 돌아갔을때, 그곳의 사람들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소소한 웃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자만이 느낀 공포감.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을때의 포근한 느낌을 아직도 잊을수 없다. 설명할순 없지만 그 짧은 시간에 느낀 공포와 두려움은 삭막했던 군생활을 견딜수 있게 해주었던것같다.

기억 #2

누구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것 같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때 느끼는 외로움과 공포는 설명하기 조차 힘들다. 그럴때 어디에선가 한줄기 빛이라도 보이면, 그것이 유일한 길이 되어 시선을 고정시키게 된다. 그 길만이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공간이 된다. 그리고 때로는 그 빛이 자신의 절대적인 진실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만난 터널은 예전의 두려움을 가져다 주진 않았다. 이제 세상속에 살아가면서 만남과 헤어짐, 고민과 번뇌, 아픔과 두려움을 모두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희망이 작아질수록 두려움도 작아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어둠속에서 느껴지는 하나의 빛이 진실된 것이어야 한다. 혼란과 어지러움 속에 살아가는 우리시대에는 더욱더 그러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빛은 결코 어둠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터널을 빠져 나오자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자신만의 속도로 풍경을 만들고 있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속도감도 느껴진다. 어둠속에서 기다리던 한줄기 빛이 바로 이런것이다. 살아있어서 움직이는 것, 정체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가지는 가장 진실된 모습인지도 모른다.

어렵다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 고민과 외로움을 모두 이해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은 이렇게 살아 있으며 느끼는 모든 것이다. 어둠은 곧 빛이 되어 다가온다. 두려움은 그것을 극복할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 준다. 어둠속에서 우리가 바라던 것은 이렇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한 삶의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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