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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좋은 영화 다시 보기.

by G_Gatsby 2009. 5. 19.


나른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하늘은 푸르고 옷차림은 가볍습니다.
오랜만에 거리로 산책을 나가 봅니다. 세상은 온통 여름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패션 모기장이 등장하고, 선풍기가 길가에 나와 주인을 기다립니다. 어울리진 않지만, 무좀약 파는 아저씨도 거리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애완견 센타 앞을 지나치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춥니다.
귀에 익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피아노와 어울리지 않는 외모이지만, 이 선율은 무척 반갑습니다. 하지만 약간은 기분이 나빠옵니다.

'요즘 강아지들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면서 사는구나'
그 흔한 유행가조차 듣지 않고 지내는 스스로가 부끄럽습니다. 가만 보니 개만도 못하게 사는것 같은 생각이 살짝 듭니다. 흠칫거리며 언릉 자리를 뜹니다.

' 라흐마니노프 '

20년전에 개봉되었던 '샤인(Shine)'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독특한 느낌의 포스터가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데이빗 헬프갓 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아주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극심한 신경쇠약 속에서도, 태생의 아픔 속에서도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은 잊혀지질 않았습니다.  영화속 그가 연주한 곡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었습니다. 그 음울한 느낌의 피아노 선율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영화를 보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봉사 단체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려고 상영했던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다시 울었습니다. 그때 느겼던 감동과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다시 기억이 났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본 영화속에는 어릴적 그 느낌과 감동이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비를 흠뻑 맞은 주인공이 담배를 입에 물고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열정을 느낄수 있었고, 치열한 삶의 인내를 다시 느낄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영화속 장면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그때 느끼던 감동을 다시 느낄수 있었습니다. 한때는 두어시간동안 그의 음악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적도 있었습니다.

기억 하나.

삶의 일부분은,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되돌림에 있는것 같습니다.
가슴속 깊이 잊혀져 있던 느낌과 기억이 어느 순간 되살아 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삶은 시작과 끝이 하나가 되어 결코 끊기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길을 걸으며, 영화의 한 장면들을 생각해 봅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삶의 열정과 감동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선율을 생각합니다. 마치 잊고 있었던 소중한 보물을 찾은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끔은 이렇게 지나간 영화나, 음악을 통해서 예전에 가졌던 느낌을 되살리는 것도 좋은것 같습니다. 내가 느꼈던 감동과 기억은 세상에서 나만이 가질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나만의 인생에서 나만이 되돌려 생각할수 있는 아름다운 회상일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새롭고 낯선것에 너무도 집중하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가 가진 삶의 진지함에서 무언가를 더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정작 스스로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끔은, 오래된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를 가득 채웠던 감동과 느낌을 되살리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만이 걷는 인생에서 느낄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