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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사람사는 세상 - 흐린 시선으로 보다.

by G_Gatsby 2009. 5. 31.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난 후부터 혼란스러운 풍경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인정할때도 되었지만,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밤새 울음을 토해냈던 거리의 풍경은 낮이 되어서도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하루에 한끼 식사도 힘들게 했던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먹는것 조차 힘겨웠던것 같습니다. 그저 소소한 일상속에 갇혀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습니다.

목소리 #1.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었습니다.
나지막한 소리로 처음부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서러움을 쏟아내는 목소리를 오랫동안 말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먼곳을 바라보던 시선이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가끔, 바라보는 풍경은 그대로 있지만 내가 보는 시선이 흐려질때가 있습니다. 바라보는 눈에서 힘이 빠지고 뿌옇게 풍경이 변해버릴때가 있습니다. 삶의 길을 잠시 잃어버렸을때나,힘겨운 삶에 서러움이 밀려올때 시선이 흐려집니다.

촛불집회를 통해서 알게된 동생이었습니다. 인천의 어느 공단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미래를 생각하는 착한 청년입니다. [관련글]: 2009/03/19 -  너의 왼발이 되어줄께

그토록 원칙을 지키고자 했던, 그래서 힘이 다 할때까지 싸워야만 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권위에 대해서는 당당함을,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는 외면을,
낮은곳을 향해서는 미소를
보였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살아왔던 삶속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고 있는 어느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를 알지 못하는 청년은, 오랫동안 억울함과 서러움의 눈물을 쏟아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해줄수 없었습니다. 그저 오랜 시간을 소리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목소리 # 2.

지하철에서 마주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멋진 양복에 깔끔한 넥타이를 메고 있는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끄럽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의 부패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있지도 않은 골프장과 호화스러운 사저에 대해서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창피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의 세월을 암흑기였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뿌옇게 변해 버립니다. 그들이 말하는것을 들으며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이토록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이 싫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셨던 분입니다. 그것도 비극적인 죽음이었습니다. 긴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념의 혼돈속에서 사회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정치적인 이념에 수많은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경제이념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권력을 가지려는 자의 위선적인 구호속에 신념과 이상을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의 어느 사상가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로 핍박받으며 세상에서 버림을 받을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모두가 잘 살게 해준다는 정치가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며,
당신도 잘살게 해준다는 자본가의 말도 모두 거짓말이고,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 언론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런 세상인지도 모릅니다.

잔인한 5월이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달이 다가옵니다.
여전히 세상은 혼돈스럽고, 시선은 흐립니다. 
소탈했던 어느 정치가가 꿈꾸던 그런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수 있는 것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젠, 눈물을 거두고 그런 세상을 위해서 한걸음씩 나아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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