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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떡파는 할머니와 경상도 아저씨.

by G_Gatsby 2009. 8. 10.

더위는 저녁이 되어서도 사라지질 않는다.
밤거리의 풍경은 멀리 보이진 않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특별한 냄새가 전해져 온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냄새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땀냄새도 밤이 되면 더욱 더 선명하게 전해져 온다. 가끔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곳의 풍경을 맡아 보는것도 좋은것 같다.

시선 #1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고 떠들더니, 온동네가 시끄럽다.
밤이 늦도록 도로의 공사는 멈추질 않는다. 사거리의 한모퉁이에는 늦은 시간에도 용접을 하고 자재를 옮기는 아저씨들이 분주하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음식점에서는 하나둘씩 거리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손님들을 맞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분주함과 공사하는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음식점에서 나오는 왁자지껄한 소리도 만만치 않다. 옆에 편의점에서 생수 한병을 사서 나도 대로가의 테이블에 앉아 땀을 식힌다. 쥐가 밤을 좋아해서 인지, 밤이 늦도록 삽질하는 소리는 멈추질 않는다.

할머니 한분이 가방을 들고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이내 노천 테이블위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젊은이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건넨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무언가 미안한듯한 표정이 머문다. 젊은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할머니는 다시 주변을 서성이다가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중년의 남자들에게로 다가간다. 술에 약간 취한 중년의 남자가 큰소리로 안사요 라고 말한다. 이내 할머니는 뒤로 물러선다.

할머니는 손에 떡을 몇개 들고 있다. 아마도 술을 먹는 사람들에게 떡을 사라고 했던 모양이다. 이 무더운 여름날 술을 먹으면서 떡을 먹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인지 할머니의 표정에는 미안함이 가득 담겨져 있다.

" 할매요~"

뒤에서 누군가가 할머니를 부른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다. 뒤에서 용접을 하고 있던 아저씨가 바닥에 앉아서 할머니를 부른다. 잠시 쉬는 시간인지 아저씨들이 물과 막거리를 마시고 있다. 할머니의 손에서 떡봉지 두개를 빼앗아 간다. 그리고 만원짜리 하나를 건넨다. 아저씨는 잔돈을 건내려는 할머니의 손을 막는다.

" 마 됐소. 가소"

술을 마시던 테이블에서 다시 할머니를 부른다. 할머니는 그곳에 가서 다시 떡봉지 두개를 판다. 그렇게 몇개의 떡봉지가 이리저리 팔린다. 떡을 산 경상도 아저씨는 막걸리와 함께 떡을 입에 넣는다. 떡을 씹으면서도 할머니의 모습에서 눈을 떼질 않는다. 어쩌면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워 하는지도 모른다.

상기된 표정으로 음식점을 나오는 할머니의 손은 가벼웠다
. 나도 하나를 사려고 만원짜리 한장을 꺼냈는데 나한테 돌아올 떡은 없는 모양이다. 할머니는 이내 종종걸음으로 나를 지나쳐 사라진다.



기억 #1

평생 가진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살고 있는 어느 이름없는 기부자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이 난다. 평생을 작은 구두방에서 구두를 팔고 수선을 하며 모은돈을 매달 수십만원씩 오갈곳 없는 사람을 위해서 기부를 했다고 했다. 자신의 외아들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이를 위해서 모으던 적금을 모조리 기부했다고 했다. 슬픔을 이기는 방법은 이렇게 나눠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조금 더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사치하지 않으면서 돈을 모았다고 했다. 불쌍한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요즘 장사가 잘 되질 않아서 매월 모으는 돈이 작아진다고 아쉬워 했다.

나누어 갖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가슴에 작은 기쁨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기쁨이야 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는 늘 사랑이 넘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부끄러워 했다. 결국 취재하러 갔던 기자는 기부자의 사진 한장 찍지 못했고 이름 석자를 쓰지 못했다.


할머니의 뒤를 따라가며 떡을 사려고 했던 돈을 그냥 드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러질 않았다. 지금 할머니의 손에 쥐어진 얼마의 돈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작은 사랑을 느끼는 것이 더 나을것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오늘 하루가 마음씨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간 운이 좋은날로 기억되길 바랬다. 

밤거리를 거닐면서 가끔은 이렇게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사랑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늦은 시간에도 멈추질 않는 노동에 지친 땀내음과, 홀로 밤거리를 거닐며 외로웠던 노인의 숨소리도 느낄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작은 행복도 느낄수 있다. 날씨가 더운 여름밤,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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