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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이별(離別) 후에 - 영원함을 꿈꾸며..

by G_Gatsby 2009. 11. 9.

 

가을을 알리는 길가에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이 들어갑니다.
얼마전만 해도 은행열매를 얻기 위해서 돌팔매질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열매를 모두 떨구어낸 은행나무옆 거리에는, 계절의 마지막을 알리는 노란색 풍경만이 남아 있습니다.

시선 #1

유명한 연예인의 아들이 신종플루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TV를 보지 않아서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사진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슬픔도, 혈육을 잃어버린 슬픔만큼 큰것은 없을것 같습니다.

신혼여행을 떠났던 부부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부부는 순식간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이렇게 비극적으로 마무리 되는것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세상에는 두분의 사랑이 아름답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죽음은 우리곁에 늘 준비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몰라서 두렵기도 하고, 언제쯤 올지 몰라서 실감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죠. 죽음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인연의 고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며 영원함을 꿈꾸는지도 모릅니다.

기억 #1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아마도 이십여년이 훨씬 넘은 기억입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늘 일정한 모습이었습니다. 늘 아픈 모습으로 이불에 누워 있는 모습밖에 없습니다. 온전히 걸어다니는 할머니의 모습이나,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랑을 전해주는 할머니의 모습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중풍을 앓아서 오랜 시간 누워계셔야 했습니다.

큰아버지댁에 놀러가면 할머니는 작은방에 거동도 못하시고 누워계셨습니다. 그러면 할머니에게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사촌들과 놀러가는게 전부였습니다. 인사를 드릴때마다 할머니는 무어라 말씀을 하셨지만 알아들을순 없었습니다. 갈수록 할머니의 모습은 쇠약해져갔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할머니의 건강이 조금 회복된 적이 있었습니다. 몸이 좋아지셨는지 고개도 끄덕이시고 말씀도 조금씩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조그마한 상자를 가리키며 그것을 열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요구르트가 들어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먹으라고 손짓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할머니는 간간히 찾아오는 손주에게 주려고 먹지 않고 아껴놓으신 모양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말도 남기시지 못한채 조용히 돌아가셨습니다. 오랜 투병생활을 거치면서 쇠약해진 몸은 세상 무엇보다도 가벼워 보였습니다. 할머니의 장례식날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슬픔을 알기엔 너무도 어린 나이였나 봅니다.

기억 #2

오랜 시간이 흘러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의 산소에 가고 싶었습니다. 코흘리던 아이는 이제 장성한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기억이 없어서 인지 자주 찾아뵙지 않았는데, 그날은 알수없는 무언가의 느낌이 할머니를 찾게끔 만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산소를 향해 걷다가 갑자기 요구르트 생각이 났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요구르트가 왜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는 한번도 생각한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요구르트와 꽃을 사서 산소로 향했습니다. 아마도 평소에 즐겨 드시던 요구르트가 드시고 싶었나 봅니다.

할머니의 산소앞에 요구르트를 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갑자기 알수 없는 슬픔이 찾아오면서 오래된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할머니가 상자를 가리키던 손끝의 떨림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손주가 먹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모습이 기억났습니다. 중풍으로 거동도 못하시던 할머니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주를 기다리며 기력이 있을때마다 상자를 열고 닫기를 반복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힘이 다빠져버린 할머니가 손주에게 해줄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기억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사랑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다시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할머니의 죽음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십수년이 지나서야 참지 못하고 오랫동안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과 할머니의 사랑은 잊혀지지 않고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의식과 기억속에서 영원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기억은 자신에게 찾아올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 됩니다. 누군가에게 전해준 사랑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서로의 기억과 다음의 기억에서 영원함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전해준 사랑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져 그 생명력을 이어갑니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영원함을 꿈꾸며 살아있는 존재로 남아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것 같으면서도 함께 이어가는 사랑의 기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영원함을 꿈꾸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