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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몸살, 그리고 더 스토리.

by G_Gatsby 2009. 11. 2.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을의 종말을 알립니다.
언제나 짧게 느껴지는 가을은, 올해도 이렇게 마무리 되어 가나 봅니다.
가슴 벅찬 수확의 기쁨도 없이 길고 긴 겨울이 오는것 같습니다.
계절은 항상 우리에게 아쉬움을 안겨주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일주일 전부터 몸살감기에 걸린것 같습니다.
요즘 신종 플루가 유행이라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제 몸은 비켜가는것 같습니다. 그리 자랑할만한 체력은 아니지만 일주일정도 몸살감기를 앓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것 같습니다. 코주변에도 염소 수염이 자라고 턱에도 까칠한 털이 제법 자리를 잡습니다. 면도를 할까 했지만 그것도 귀찮아 집니다.

더 스토리 #1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적지 않은 책을 본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100여년 전에 태어나 살았던 어느 혁명가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얼마전에 보았던 장지락의 이야기인 김산 평전과 이번에 출판된 박헌영 평전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팽창과 이념의 갈등은, 시대의 원죄를 망각하고 왜곡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라 잃은 슬픔을 이겨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삶이 사상의 검증을 받게 되고, 다수의 사상에 적합하지 않으면 버려진다는 새삼스러운 역사의 진심을 알게 된것 같습니다.

100여년전에, 나라를 되찾겠다고 생각했던 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의 신념은 해방된 조국이었습니다.


박헌영 평전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안재성 (실천문학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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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미국을 등에 업고 일본이 아닌 미국의 식민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하고, 해방된 조국에서도 탄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건국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가 가졌던 신념, 자본과 반공사상은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적 행위로 부를 쌓아오던 세력과 결합할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김구 선생과 같은 민족적 반공주의자가 있었고, 김원봉 같은 테러주의자도 있었습니다. 장지락과 같은 공상주의를 이용한 해방투쟁이 있었고, 박헌영 같은 민족적 공산주의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권력을 가진 이승만 세력과 김일성 세력에 의해서 숙청되고 맙니다. 역사는 이렇게 마지막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계승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주류에 들지 못하면 이단으로 취급받는 세상인가 봅니다. 권력의 승자는 잔인함으로 무장하여 패자를 유린하는 세상인가 봅니다. 실패한 혁명가의 삶은 오랜 시간 암묵적 동의에 의해서 잊혀져갔습니다.

더 스토리 #2

우연히 어느 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병신춤을 신명나게 추던 공옥진 여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였습니다. 노구의 몸을 이끌고 온갖 병에 걸려서 힘들어 하는 여사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나라의 보살핌을 받는 인간문화재로 지정이 되지도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이 되어서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춤과 가치를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거동도 불편한 그녀에게 리포터가 20여년전에 그녀가 공연하던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비취던 눈물과 갈망의 눈동자를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춤은 그녀에게 삶의 희망이었던것 같습니다. 움직이기도 힘든 그녀에게서 어깨춤이 저절로 흘러 나옵니다. 말하기도 버거워 보이던 그녀에게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녀의 춤과 노래는 삶의 모든것이었던것 같습니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것에 대한 원망은,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은 아닌것 같습니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억울함과 섭섭함인것 같습니다. 사회는 그녀의 춤과 노래가 전통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후계자를 만들어 이어갈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춤이 우리의 것이고 그녀의 노래가 우리의 것이었음에도, 그녀가 보여준 창작극은 우리 전통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그녀의 춤은 더이상 보기 힘들것 같습니다. 춤을 출때 웃던 그녀의 모습도 앞으로 보기 힘들어질것 같습니다. 그녀는 인터뷰 마지막에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작은 위대한 것입니다.
해방된 조국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사라진 수많은 혁명가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배척한 우리 사회가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삶을 다시 끌어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들의 삶을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수 있는 힘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뿌리를 잃어 버린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합니다.

세상 모두가 놀란 그녀의 춤사위를 생각해 봅니다.
그녀의 춤과 리듬에 감탄하며 그녀에게 던졌던 수 많은 언론들의 찬사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모두 던져 자신만의 춤과 노래를 만들었던 어느 춤꾼의 주름진 얼굴을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되고 만들어진 화분속에서 거친 사회의 기름진 뿌리를 조금씩 잘라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